2025년 가을, 서울 코엑스에서는 로봇 산업의 두 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사가 함께 열렸다. 서울시가 주관한 제1회 서울AI로봇쇼는 시민이 로봇을 체험하고 공존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반면 제24회 IEEE-RAS 국제 휴머노이드 로봇 학술대회(Humanoids 2025)는 글로벌 전문가와 기업들이 참여해 액추에이터·센서·AI 기술의 산업 적용과 신제품을 공유한 전문 무대로, 같은 장소에서 열렸지만 두 행사는 각각 생활 속 로봇과 산업 속 로봇의 현재를 보여준 상반된 매력이 펼쳐지는 현장이었다.
기술이 일상이 되는 순간, 제1회 서울AI로봇쇼
2025 제1회 서울AI로봇쇼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를 비롯해 돌봄·산업·농업 등 다양한 로봇들이 등장해 인간과 로봇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줬고, 시대별 전시관에서는 30년간의 한국 로봇 기술발전사를 한곳에 모아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아닌 삶과 감각을 확장하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다.
친숙한 로봇 다가오다
서울시는 2023년 ‘로봇산업 육성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로봇기업 혁신 성장, 서비스 대중화, 수서 로봇클러스터 조성을 골자로 한 중장기 로드맵을 추진해왔다.
이는 단순히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로봇을 시민의 일상과 산업 생태계 전반에 스며들게 하려는 ‘로봇친화도시 서울’ 전략의 출발점이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로봇산업 성장펀드를 조성하고, 로봇 실증·체험 거점인 서울로봇인공지능과학관을 개관하는 등 산업 기반과 시민 체험 공간을 동시에 확충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을 지난 9월 30일(화)부터 10월 2일(목)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제1회 서울AI로봇쇼(이하 서울AI로봇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라이프위크 2025와 함께 열린 이번 행사는 서울시가 구상하는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한자리에 모은 축제이자, 기술과 시민이 만나는 새로운 형태의 박람회였다.
이번 서울AI로봇쇼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는 코엑스 2층에서 진행된 ‘2025 극한로봇 경진대회’였다. 재난, 우주, 심해 등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한 트랙 위에서 참가 로봇들이 험지 주행, 장애물 극복, 화재진압, 구조자 탐색 등의 미션을 수행했다. 서울시는 이 대회를 통해 극한 환경용 로봇 기술의 개발과 실증을 장려하고 있으며, 특히 자율주행·원격조종·센서퓨전 기술을 결합한 복합 로봇 플랫폼의 잠재력을 부각시켰다. 일부 참가 로봇은 실제 재난 대응 연구소의 시제품으로, 실시간 데이터 피드백과 상황 판단 능력을 시연해 업계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코엑스 3층에서 진행된 전시장에는 극한 환경 로봇, 돌봄로봇, 의료로봇, 서비스로봇, 휴머노이드 로봇 등 100여 종의 첨단 피지컬 AI 기술이 전시돼 로봇산업의 스펙트럼을 총망라했다. 특히 인간의 감정과 언어를 학습하고 소통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Sophia)가 무대 중앙에 등장해 관람객과 대화를 나누며 화제를 모았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 무너뜨리다
서울AI로봇쇼 전시장의 중심, 수많은 관람객이 모여든 부스 한가운데에 한 로봇이 서 있었다.

사진. 로봇기술
조용히 서 있던 그 로봇이 고개를 들고 나를 보는 그 순간, 기술이 만들어낸 생명 같은 움직임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아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로부터 세계 최초로 시민권을 부여받은 인공지능 로봇이다. 기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너 참 예쁘다”라고 말을 건넸다. 소피아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더니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마워요”라고 답했다.
눈동자는 내 시선을 따라 움직였고, 말끝마다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에는 감정이 묻어 있었다. 그짧은 대화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소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질문을 받은 후 잠시 머뭇거리며 생각하는 듯한 동작까지,그 모든 순간이 인간의 대화 습관을 완벽히 재현하고 있었다.
이 단순한 문답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음성인식 기술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쁘다”라는 주관적 표현을 이해하고, 그에 어울리는 감정형 답변을 내놓기 위해서는 언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맥락과 감정 톤, 인간의 사회적 반응을 동시에 해석해야 한다. 즉, 소피아는 대화의 문법을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의 의도와 감정까지 추론해 반응하는 존재였다.
소피아의 머릿속에는 자연어처리(NLP) 기반의 대화엔진이 탑재돼 있으며, 표정과 입술 움직임을 제어하는 60여 개의 미세 서보모터가 얼굴 곳곳에 배치돼 있다. 그녀의 눈에는 시선 추적 센서가 장착돼, 상대방의 위치와 감정 변화를 인식해 반응한다. 목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얼굴 근육이 함께 움직이며, 그 움직임은 기계적인 연산이 아닌 ‘대화의 맥락’을 반영한 정서적 표현으로 다가왔다. 이를 통해 ‘AI가 인간의 언어를 넘어 감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더불어 관람객들은 소피아의 대화를 지켜보며 저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사람의 말투와 억양을 학습한 그녀는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등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외국인 관람객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 순간, 현장을 지켜보던 기자 역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눈앞의 존재는 더 이상 프로그래밍된 장치가 아니라, 인간과 감정을 주고받는 또 하나의 지적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서울AI로봇쇼 현장에서 마주한 소피아는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닌, 인간과 로봇이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질적 증거였다. 그리고 그 경험은 ‘로봇이 인간과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오랜 물음을 ‘이미 대화하고 있다’라는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한국 로봇 30년 살피다
소피아 외에도 서울AI로봇쇼 현장은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미디어아트존’은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 로봇기술
거대한 LED 스크린 앞에 관람객들이 서면, 그들의 움직임에 반응해 로봇들이 등장하고 인사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마치 화면 속 로봇들이 사람을 인식하고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는 스크린 전면에 설치된 이미지 센서가 사람의 위치와 동작을 실시간으로 인식해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시스템 덕분이었다.
아이들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은 “로봇이 나한테 인사했어!”라며 웃음을 터뜨렸고 이는 단순한 영상 전시가 아니라, 관람객의 존재에 ‘반응’하는 체험형 공간이었다.
각 공간마다 전시된 로봇이 달랐는데, 기자는 다사로봇(현 휴림로봇)이 개발한 반려로봇 제니보(Jennybo)를 영상으로 만났다. 활발히 움직이며 감정 표현을 하는 제니보는 미디어아트존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강아지처럼 생긴 이 로봇이 어떤 로봇인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이곳에서 만난 로봇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모델로, 미디어아트존을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대별 로봇 전시관’으로 그 맥락이 연결됐다.
시대별 로봇 전시관은 한국 로봇산업 30년의 흐름을 한눈에 정리한 특별 전시로, 1990년대부터 현재, 그리고 2025년 이후의 미래까지를 연대기 형태로 구성했다.
전시관 내부는 세대별로 전시돼 관람객은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한국 로봇의 진화 과정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각 구역에는 대표 로봇이 실제 크기 그대로 전시돼 있었고, 옆 패널에는 당대 기술의 핵심 개념과 연구 배경이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사진. 로봇기술
1990년대 구역은 ‘지능형 로봇의 태동기’로 꾸며졌다. 이 시기 로봇은 산업 자동화보다는 연구 중심이었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센토(Cento)가 전시관의 첫 주인공이었다.
센토는 상체는 인간형, 하체는 네 발 달린 동물형으로 설계된 하이브리드 구조로, 약 4세 아동 수준의 판단 능력을 구현했다. 블록을 쌓거나 톱질을 하는 동작시연 영상이 함께 상영돼 관람객들은 로봇이 단순 명령을 넘어 ‘상황을 인지하며 행동한다’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의 사고를 기계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초창기 시도를 상징했다.
2000년대 구역으로 이동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 제정(2008년)’되며 정부가 로봇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며 본격적인 산업 기반이 만들어진 시기였다. IT 기술과 결합된 로봇들은 점차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진. 로봇기술
대표작 KAIST의 아미(Ami)는 인공시각시스템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명령에 따라 물건을 옮기는 시연으로 관람객의 눈을 끌었다. 가슴에 달린 LCD 패널에는 기쁨, 슬픔, 놀람 등의 이모티콘이 표시돼,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첫 시도를 보여줬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앞서 미디어아트존에서 등장한 제니보 실물이 전시돼 있었다. 강아지처럼 제작된 이 로봇은 코 부분에 장착된 카메라로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머리와 옆구리에 내장된 터치 센서로 ‘쓰다듬기’ 등 감각 자극에 반응하며 눈의 LED 이모티콘과 귀여운 동작을 통해 1,200여 가지 감성 표현이 가능해 한국형 감정 로봇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로봇이다.
두 로봇은 2000년대 한국 로봇 기술이 인간과의 교감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시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음은 2010년대 구역, ‘로봇의 일상화 시대’였다. 이곳에서는 KIST의 마루(MAHRU)가 전시됐다. 모션 캡처 기술과 자율보행 제어 시스템을 결합한 마루는 균형을 스스로 잡으며 부드럽게 보행이 가능하다.
같은 전시대 다른 로봇인 KIST의 실벗3(Silbot3)가 서 있었다. 실벗3는 감정표현과 자율주행 기능을 결합한 로봇으로, 고령자 치매 예방 프로그램 시연이 가능하다. ‘노인 돌봄, 교육, 공공서비스’라는 주제가 부각되며, 로봇이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시작한 시기를 상징했다.
마지막으로 ‘2025년~’ 구역은 조명이 유난히 밝았다. 이 구역은 ‘피지컬 AI 시대’를 주제로, 로봇이 인간의 감정과 환경을 이해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단계를 보여줬다.

사진. 로봇기술
관람객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에이로봇의 휴머노이드 로봇 에이미(AIMY)였다. 에이미는 LLM(대규모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수행하며, 사람의 표정을 인식해 미묘하게 제스처를 바꿀 수 있다.
AI와 로봇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융합된 결과물이었고, 전시관의 설명대로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에서, 대화하는 로봇으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서울AI로봇쇼의 시대별 전시는 기술 전시를 넘어, 로봇과 인간의 관계가 ‘명령과 응답’에서 ‘공감과 교감’으로 변해온 여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공간이었다. 과거 연구실에서만 존재하던 로봇이 이제 시민의 일상으로 들어온 것, 그 변화의 전 과정을 서울시가 가장 생생하게 증명해낸 셈이다.
이외에도 로봇 및 약자동행 기업전시관에서는 ‘극한로봇관’과 ‘로봇세계관’이 마련돼 수중·우주·재난·육상 등 환경에서의 로봇 응용 사례를 선보였다. 달 탐사 로봇, 수술·재활 로봇, 돌봄 로봇 등은 로봇산업이 산업 자동화 단계를 넘어 인간 복지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로봇과 함께하는 현실 체감
전시장 곳곳의 기업 부스에서는 피지컬 AI가 실제 산업으로 구현된 사례들이 펼쳐졌다. 그중에서 나우로보틱스는 이번 서울AI로봇쇼에서 정밀 제어 로봇 시연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6축 다관절 로봇 NURO X 시리즈와 멀티 그리퍼(NAU ELE)를 활용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바늘에 실 꿰기’ 체험을 제공했으며, 로봇이 0.5㎜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 시연을 통해 산업용 로봇이 반복 작업을 넘어 섬세한 감각까지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한편 동사는 서울AI로봇쇼에서 로봇쇼 부문 ‘서울시장상’인 2025시민혁신상을 수상했다
비욘드허니컴의 AI 그릴로봇 ‘Grill-X’는 고기의 익힘 정도를 센서로 감지해, 셰프처럼 불조절을 수행했다. 분자센서가 냄새와 색상 변화를 인식하고, AI가 화력·시간·각도를 조절했다. 이 로봇은 단순한 기술 시연이 아니라, 요리의 감각을 이해하고 재현하는 로봇으로 주목받았다.
엑스와이지(XYZ)는 로봇 바리스타를 통해 음료 제조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로봇팔이 컵을 집고, 커피를 추출하며, 고객 얼굴을 인식해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로봇 서비스의 인간화’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상징했다.
영일모빌리티는 유니트리 사족보행 로봇을 활용한 주행 시연으로, 복잡한 장애물과 경사면에서도 자세를 스스로 조정하며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기술은 향후 물류·보안·재난구조 분야에서의 활용이 기대된다.
로봇과 인간, 함께 걷는 시대
서울AI로봇쇼의 전시를 관람하고, 로봇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을 대체하려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봇은 인간의 감각과 능력을 확장하며, 삶의 효율과 가능성을 함께 넓히는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 센토를 통해 인간형 로봇 개발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제는 인간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시대가 열렸다. 30여 년간 이어진 기술의 흐름은 결국 ‘인간 중심의 로봇’이라는 방향으로 모였다. 즉 사람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로봇으로 수렴해왔다. 이번 서울AI로봇쇼는 그 변화의 궤적을 압축해 보여준 무대였다.
연구실 속 시제품이 시민 앞에 서고, 산업용 로봇이 생활 속 파트너로 변모하는 순간들을 통해 국내 로봇산업의 폭과 깊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소피아를 비롯한 휴머노이드 로봇 전시는 ‘피지컬 AI’가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로봇이 인간의 사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음을 증명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며, 사람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그 모습 속에는 ‘로봇이 인간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번 전시는 산업과 시민,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장으로 마련됐다. 서울AI로봇쇼는 단순한 기술 박람회가 아니라,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를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본 수많은 로봇들은 경쟁자가 아닌, 우리와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또 다른 ‘시민’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제24회 IEEE-RAS 국제 휴머노이드 로봇 학술대회(Humanoids 2025) 관련 기사를 다음 Monthly Focus2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