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족 보행로봇은 전투나 재난지원에서부터 시설물 감시나 모니터링, 방범·순찰 및 엔터에인먼트, 실버케어 등 여러 영역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군용으로 처음 개발된 4족 보행로봇은 우수한 이동성, 특히 일반 자율주행로봇이 수행할 수 없는 계단이나 험지 이동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최근 여러 민간 분야에서도 활용성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애니보틱스의 애니멀(사진. 애니보틱스)
최근 4족 보행로봇 분야의 흐름을 살펴보면 2000년도 중반의 드론 산업이 떠오른다. 군사용 무인항공기에서 시작한 드론은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기동성과 카메라 및 센서를 통한 감지 능력 등을 기반으로 민간 산업 분야에서 높은 활용성을 인정받아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DJI가 드론에 대한 진입장벽을 개인 레저 용품 수준으로 낮추면서 민간용 드론에 대한 제도적 정비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4족 보행로봇도 군에서 시작해 최근 민간 산업 분야로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상황이다. 4족 보행로봇을 세계에 가장 널리 알린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빅독(Big Dog)은 미국 국방성 산하의 핵심 연구개발 조직 중 하나인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지원을 받아 개발됐다.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거친 지형이나 산악 지형에서 노새처럼 군인의 군장이나 무기를 대신 짊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콘셉트로 개발된 것이다. 이 로봇은 실제로 개나 말과 유사한 형태로 모션을 취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견마로봇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서는 견마로봇에 대해 ‘무인 전투 체계를 구성하는 단위 요소로 근접 전투 간 감시 정찰, 주요 시설 감시 경계, 지뢰 탐지 및 물자 수송 등의 임무 수행이 가능한 로봇’으로 정의하고 있다. 기동방식에 따라 차륜형 로봇 또한 견마로봇의 범주에 포함하며, 장비 이송이나 감시 경계, 지뢰 탐지 외에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이동형 무선 통신을 활용해 인접한 부대나 상-하급 제대 간의 실시간 정보 공유를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인 역할도 가능하다.
견마로봇 개발 불씨 지핀 빅독
보스턴다이내믹스가 빅독을 공개한 시기는 2005년 3월로 알려져 있지만, 기술의 기원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창립자인 마크 라이버트(Marc Raibert)는 1980년 카네기멜론대학교에서 시작해 1986년 메사추세츠공대로 이관된 레그랩(Leg Laboratory)에서 착상한 여러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1995년부터 빅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DARPA의 자금을 지원받아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원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서 연구진은 바퀴나 궤도차량이 진입하기 힘든 거친 지형에서 연료나 탑재물을 운반하기 위해 사람이나 동물의 다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4족 보행로봇에 대한 개발이 오래 전부터 진행됐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주로 민군기술협력사업으로 견마로봇/다족형로봇 등의 기술 개발 과제가 추진됐다. 일례로, 2005년 7월 정보통신부와 국방부 협력위원회와 같은 해 9월 개최된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네트워크 기반 다목적 견마로봇’에 대한 공동 연구개발 계획을 확정하고 2006년 9월부터 연구 개발이 추진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방과학연구소(ADD),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 포항지능로봇연구소(現한국로봇융합연구원) 및 로템, 한화, 케이엔알시스템 등 국내 유명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4족 보행로봇 개발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원천기술들을 확보했다.
4족 보행로봇… “짐만 드는 게 아니었어?”
치타3(사진. 위키피디아)
흔히 4족 보행로봇이라 하면 대부분 견마로봇을 먼저 떠올리지만, 비슷한 형태를 지니더라도 핵심 개발 포인트에 따라 그 능력이 달라진다. 가령 전투나 재난지원에 사용되는 4족 보행로봇은 무거운 짐을 지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이동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개발 관점이라면, 속도와 민첩성에 방점을 둔 치타로봇과 같은 제품도 있다. MIT 김상배 교수팀이 개발한 치타3는 주행속도가 무려 30마일(시속 약 48㎞)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귀여운 애완용 반려로봇으로 개발된 4족 보행로봇도 있다. 바로 소니가 1999년에 시판한 아이보와 다사로봇(現휴림로봇)이 2008년에 출시한 제니보이다. 이 같은 완구형 로봇들은 하드웨어적인 강력함보다 소프트웨어 및 콘텐츠가 주요 개발 관건이다.
4족 보행로봇 애플리케이션의 확대
얼마 전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면서 4족 보행로봇에 대한 관심이 국내에서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비전, 라이다 등 센서 기술의 발전은 4족 보행로봇이 군 전략 체계를 벗어나 보다 다양한 곳에서 활약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그중 최근 주목할 만한 분야로는 4족 보행로봇을 활용한 산업시설 모니터링 분야 등이 있다.
공장 안전을 모니터링하는 스팟(사진. 현대차그룹)
최근 애니보틱스는 벨로다인라이다의 라이다 센서를 탑재함으로써 산업 시설 운영업체들에 공장을 추적 관찰하고 유지 관리하는 자동 로봇 검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의 4족보행 로봇 ‘애니멀(ANYmal)’은 채광 및 광물, 석유 및 가스, 화학물질, 에너지 및 건설 등 험난한 산업 여건에서 검사하고 추적 관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애니멀의 다리는 계단을 오르내리고 장애물, 층계 및 간격이 벌어진 곳을 넘어가며 좁은 공간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등 우수한 이동성을 제공한다. 애니멀의 검사 탑재체는 장비와 인프라의 상태 추적 관찰을 위한 시각, 열, 청각관련 통찰력을 제공한다. 벨로다인의 퍽 센서를 탑재한 애니보틱스의 로봇 검사 솔루션은 산업 환경을 측정해 장애물을 감지할 수 있어서 애니멀의 충돌을 방지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갖고 험한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차그룹이 가장 먼저 협력한 프로젝트도 이와 같은 분야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산업 현장의 위험을 감지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공장 안전 서비스 로봇을 최초로 공개하고 기아 오토랜드 광명 내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에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의 인공지능(AI) 기반 소프트웨어가 탑재된 AI 프로세싱 서비스 유닛을 접목한 이 시스템에는 3D라이다와 열화상 카메라, 전면 카메라 등 여러 센서와 딥러닝 기반 실시간 데이터 처리로 출입구의 개폐 여부 인식 및 고온 위험 감지, 외부인 무단 침입 감지 등을 할 수 있다.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등장
샤오미의 사이버도그(사진. 샤오미)
4족 보행로봇 분야는 드론과 유사한 형태로 시장 전개가 이뤄지고 있으나, 법적인 규제와 제약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드론보다는 짧은 기간 내에 시장이 개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이다. 이에 따라 최근 유수 기업들이 이 시장을 겨냥한 플랫폼을 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9년부터 기업을 대상으로 리스 형태로 공급했던 스팟을 2020년에 본격적으로 출시, 일반 판매를 시작했다.
한편 올해 선보인 4족 보행로봇 제품 중 가장 눈에 띈 제품은 단연 샤오미의 ‘사이버도그(CYBER DOG)’가 아닐까 싶다. 샤오미는 자체 개발한 서보모터를 적용해 최대 3.2㎧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백플립과 같은 고난이도의 동작도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샤오미는 사이버도그에 384개의 CUDA 코어와 48개의 Tensor 코어, 6개의 Carmel ARM CPU 및 2개의 딥 러닝 가속 엔진을 포함하는 임베디드 및 에지 시스템용 AI 슈퍼컴퓨터인 NVIDIA Jetson Xavier NX 플랫폼을 탑재해 고성능 연산 능력을 지원한다. 특히 샤오미는 오픈소스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사이버도그의 핵심 모듈을 재구성하고 최적화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4족 보행로봇 연구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