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본디 목적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기 위함으로, 따라서 로봇의 발전은 언젠가는 로봇의 발전으로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인류의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해왔다. 특히 여러 로봇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최근에는 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LG경제연구원은 로봇과 인공지능 발전에 대해 인류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3. 대체가능성이 큰 직업유형
로봇,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이 일자리의 총량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비관론, 현실론, 낙관론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로봇, 인공지능이 향후 직업 세계의 판도를 크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논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비록 단순화의 위험이 있지만 이해 편의성을 위해 세상의 직업들을 업무의 정형성과 반복성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정형성과 반복성이 클수록 기계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여기에는 대다수 비숙련직과 숙련직들이 해당될 수 있다.
또한 최근 기술 발전 추이를 감안할 때, 기계의 인력 대체 범위는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까지도 확대될 수 있다.
1) 비숙련직에 대한 대체 속도 ‘완만’
사실 비숙련직은 과거 수십 년간의 로봇,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상당부분 대체되었다. 무인 매표기의 도입으로 이미 영화관, 경기장, 지하철에서 매표원들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또한 사무 자동화 소프트웨어나 ATM기의 보급으로 단순 경리직이나 은행 텔러도 크게 줄어들었다. 앞으로도 비숙련직에서는 로봇의 성능 개선과 가격 하락에 따라 기계의 인간 보완을 통한 인력 감소가 서서히 진행될 것이다. 건물 경비 10명을 CCTV 및 센서 시스템, 경비 로봇 3~4대와 경비 2~3명 형태로 전환하는 식이다. 최근 식당가에서도 무인 주문기나 무선 태블릿 주문을 통해 종업원 수를 줄이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
다만, 기계의 인간 대체 속도는 완만하고, 완벽한 대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자동화와 인력 감축이 이미 상당부분 진행된 상태로, 남아있는 비숙련직들은 모라벡의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것처럼 대개 인간에게는 쉽지만 로봇에게는 어렵기 때문이다. 즉 상당한 이동력과 다양한 업무 수행 능력,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들이 필요해 인간 수준의 로봇 개발은 힘들 수 있다. 이 부문은 임금 수준이 낮아 기계 도입의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다.
2) 숙련직에 대한 대체 압박 ‘증가’
로봇과 인공지능의 대체 압력은 오히려 숙련직에 크게 가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미지 인식 능력, 이동성과 유연성 증대에 힘입어 로봇의 작업 가능 범위는 향후 정형적 업무를 넘어 비정형적 업무까지 확대될 것이다. 인공지능도 기계학습, 소통 기술의 발전에 따라 향후 간단한 분석이나 판단, 조언까지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숙련직 부문은 고용 비중도 크고 임금 수준도 높아져 있어, 도입 경제성 측면에서 기업들의 로봇, 인공지능 도입 의사가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RFID나 센서 등을 활용한 사물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판매, 재고량의 자동 분석 인공지능이 도입되면, 사업 실적을 취합, 분석하는 사무직들의 수는 크게 감소할 수 있다. 또한 무인자동차 기술의 발전은 향후 운전기사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미 일부 경전철은 무인 방식으로 운행되고 있다. 게다가 올해 롤스로이스(Rolls Royce)사는 컨테이너 선박까지 무인화하겠다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장기간의 경험이 중시되는 대형 선박 선원마저 입지가 위협받고 있는 셈이다. 웹 개발자들도 코드 리뷰 및 테스트, 성능 최적화의 자동화 알고리즘 등장으로 당장은 업무량이 줄지만, 장기적으로 일자리 자체의 감소를 경험할 수 있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콜센터 자동화 솔루션이 확산되면 상담직 인력도 상당수 불필요해질 수 있다.
다만, 일부 숙련직에는 대체 압박이 약할 수 있다. 요리사, 이발사, 승무원, 코디네이터처럼 고객 대면 노동에 종사하고 고도의 감성 스킬이나 손재주가 필요한 서비스직의 경우 로봇을 개발하기 쉽지 않다. 고객의 취향이 제각각이고 결과가 감성 품질로 평가되며, 고객들도 로봇보다 사람이 대접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목수, 미장이, 기계 정비사, A/S기사, 제빵사 등 개인 기능직의 경우도 로봇 개발이 쉽지 않고 도입 경제성이 떨어진다. 비정형적 기술의 체화가 중요하고 한 사람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로봇 천국인 일본에서는 이미 요리 부분에도 로봇이 진출했다. 얼마 전 일본의 구라 스시는 시간당 3,500개의 초밥을 쥐는 스시 로봇을 도입해 요금을 접시당 100엔으로 낮추어 불경기에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전은 관리직이나 전문직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사실 이 분야에서는 지식, 정보의 폭주와 직무 복잡성의 증대, 정량적 분석의 중시, 업무 속도 증가로 인공지능의 활용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모라벡의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것처럼 방대한 지식 처리, 빠른 수치 계산, 오류 없는 판단은 인간보다 인공지능 쪽이 훨씬 유리하다. 또한 고임금 구조의 특성상 기업들의 로봇, 인공지능 도입 선호도도 높다.
그러나 이 분야의 업무들은 대개 비정형적이고, 세련된 소통, 설득 기술과 포괄적 시각, 유연성, 판단력,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런 능력은 대개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그만큼 완벽한 인공지능의 개발은 쉽지 않다. 또한 이러한 지식 노동은 업무 분할이 쉬워,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는 기계에 맡기고 자동화 곤란한 업무를 인간이 맡아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리직, 전문직 분야는 일부 기계로의 대체와 함께 보완, 협업의 구도가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또한 로봇, 인공지능의 발전과 함께 감성인식기술공학자, 알고리즘 설계자, 빅 데이터 분석가, 기업 프로파일러처럼 새로운 직종들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 오히려 고용이 증대될 수도 있다.
다만, 이처럼 대체와 보완/협업이 동시 진행되며 직무 내용이 크게 변할 수 있다. 예로써 병원에서 조제 자동화 로봇이 보편화되면, 병원 약사들의 업무는 반복적인 조제 기능에서 연구와 분석이 중시되는 환자 임상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다. 기업에서도 반복적인 실적 분석과 보고를 인공지능이 담당한다면, 관리직들의 업무는 비정형적인 사업 이슈를 탐색, 해결하는 사내 컨설턴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기계와의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나뉘면서, 직종 내 양극화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변호사와 그렇지 못한 변호사의 생산성 차이는 매우 커질 것이다. 관리직들 중에서도 새로운 업무 형태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사람들도 나타날 수 있다. 의료계에서도 환자의 발길은 동네 개업의보다 최신 수술 로봇과 의료진단 지원 인공지능, 병력 관리 시스템으로 중무장한 대형 병원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3) 로봇·인공지능의 발전, 중산층 위협
이러한 변화를 종합해 보면 정형적, 반복적 업무일수록 대체 가능성이 높고, 창의성이나 판단력 등 인간 고유의 역량이 중요할수록 대체보다는 보완, 협업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다만, 이미 정형적, 반복적 업무의 상당 부분은 자동화되어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정형성, 반복성이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의성이나 판단력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태의 직무들이 향후 로봇, 인공지능의 대체 위협을 가장 많이 받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창의성과 판단력이 많이 요구되는 직무도 일정 수준 대체 위협을 받겠지만, 보완, 협업이나 신규 직업의 창출로 오히려 고용 증대가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고용 시장의 양극화를 유발해 중산층의 경제적 지위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중산층들은 대부분 숙련직과 전문직, 관리직에 종사하고 있다. 숙련직의 기계 대체 강화와 전문직, 관리직 내 대체와 보완/협업의 동시 진행은 직종 내 상대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마치 문화예술, 스포츠계처럼 소수의 재능 있는 엘리트들이 큰 보상을 받고, 다수는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소득을 얻는 슈퍼스타 시스템이 다양한 직종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결국 90년대 이래 강화되어온 소득 불평등이 향후 로봇, 인공지능의 시대에 더욱 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Tyler Cowen)은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Average is over)”고 논평한 바 있다.
4. 변화에 대한 대비

이처럼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이 야기하는 직업 세계의 지형도 변화는 결국 개인, 기업, 나아가 사회에 다양한 과제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개인들의 경우 미래 직업 역량의 변화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향후 다양한 직종에서 로봇, 인공지능 등 기계와의 협업이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프리스타일 체스 경기에서처럼 강력한 인간 고수를 ‘하수들+기계+좋은 협업 프로세스’의 팀이 이기는 일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처럼 기계, 그리고 타인들과 팀을 이루어 최고의 성과를 얻어내려면 지금과는 다른 역량이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즉, 자신의 업무 전문성뿐만 아니라 로봇 및 인공지능의 운용 능력, 나아가 동료와의 협업 능력까지 배양해야 한다.
한편, 기계의 인간 대체 가능성이 높은 직종에서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존재 가치를 찾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열정, 통찰력, 공감력, 창의성, 사회성, 다기능성, 적응력 등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인간만의 고유 역량으로 존재할 전망이다.
아울러 로봇,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기업에게 직무 재설계와 업의 본질 변화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미래에는 우수 인력의 고용, 육성뿐만 아니라 인간-기계의 최적 협업 프로세스를 잘 설계하는 것이 기업의 성과 극대화에 중요할 수 있다.
또한 회사 내 직무 중 기계로 전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직원들이 부가가치가 낮은 일들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가능한 고부가가치 업무를 새로 찾아내고 이를 중심으로 직무를 고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로봇, 인공지능의 도입은 산업 전체적으로 업의 본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는 세상에서 기존의 언론 가치인 News, 즉 신속성과 정확성은 빛을 잃게 된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차별적인 통찰과 관점, 즉 Views가 중요해질 수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업의 본질 변화를 잘 파악하고 지속적인 변신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한편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는 사회적으로도 교육 시스템의 변화 필요성을 증대시킨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상식 암기와 규율 체득 등 산업 사회에 필요한 인력 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그러나 이는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즉 현재의 교육은 미래 기술 변화에 가장 취약해질 인력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향후 교육 체계는 인간에게 고유하고 자동화되기 힘든 역량들, 즉 감성, 사회성, 창의성, 열정, 협업력 등을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변수는 중장기적으로 직업 세계의 불안정화와 양극화를 야기하는 잠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계와의 협업에 성공하는 사람들은 과거보다 큰 성과를 얻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도태될 수도 있다.
기술 변화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직업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 기회 창출과 평생 교육 체계의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