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분야에서 로봇을 활용한 실험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로봇의 액체 취급 속도가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쓰쿠바대학교(筑波大学, 이하 쓰쿠바대) 연구팀이 최근 자동분주로봇이 액체를 빠르게 흡입하거나 분주하는 작업이 효모 세포의 생육이나 유전자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한 결과, 속도 차이에 따른 유의미한 영향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는 생명과학 실험에서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 주목된다.
현재 생명과학 실험에서는 재현성과 효율성 향상을 위해 로봇 기반의 자동화가 활발히 도입되고 있으며, 특히 자동분주로봇은 정밀하고 일관된 액체 처리 능력으로 필수 장비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피펫팅 속도, 플레이트 이동 속도, 혼합 속도 등의 조작 파라미터가 실제 세포의 반응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부족했다. 특히 피펫팅은 세포 배양과 시약 혼합 등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핵심 공정임에도, 그 속도에 따른 세포 스트레스 여부는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사진. Opentrons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범용적으로 사용되는 자동분주로봇인 Opentrons OT-2를 활용해 출아 효모(Saccharomyces cerevisiae)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네 가지 다른 피펫팅 속도(50, 130, 210, 290 μL/s)를 설정하고, 해당 조건에서 효모 세포에 대해 흡입, 혼합, 분주 작업을 수행했다. 이후 세포의 반응을 ▲증식률 측정(성장 분석)과 ▲RNA 시퀀싱 분석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정량적으로 평가했다.
실험 결과, 피펫팅 속도의 차이에 따라 효모의 최대 상대 증식 속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며, 이는 피펫팅 속도가 세포의 성장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시사한다. 또한 RNA 시퀀싱을 통해 유전자 발현 변화를 분석한 결과, 피펫팅 속도의 차이가 유전자 발현 프로파일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이, 어떤 유전자도 발현량의 유의미한 변화가 관측되지 않아, 해당 실험 범위 내에서는 액체 처리 속도가 세포의 분자 수준 반응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와 같은 결과는 자동화 실험 설계 시 피펫팅 속도를 보수적으로 설정할 필요 없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설정하더라도 세포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는 자동화 실험의 처리 효율을 극대화하고, 경험이나 추정이 아닌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화된 실험 조건을 설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쓰쿠바대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자동화 생명과학 실험의 설계와 실행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고, 파라미터 설정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향후에는 피펫 팁의 구조, 세포 밀도, 효모 균주, 배양액의 점도 등 다양한 조건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는지를 검증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로봇 실험의 효율성과 정밀도, 재현성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