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엑스알로보틱스의 배연로봇 / 사진. 티엑스알로보틱스
전기차 화재, 대형 산불처럼 기존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는 화재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위험 화재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소방로봇과 산불진화로봇이 주목받았다. 본지에서는 소방로봇과 산불진화로봇의 기술적 발전, 주요 기업, 현장 적용 사례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를 조명했다.
심화된 재난과 이를 위한 해결책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화재 사고에 직면하고 있다. 일상 공간에서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부터, 대규모 자연재해로 번지는 산불에 이르기까지, 화재의 양상은 갈수록 복잡하고 심화되고 있다.
2024년 8월, 인천의 전기차 화재는 극심한 열과 긴 연소 시간, 밀폐된 공간이라는 삼중의 악조건을 만들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전기차는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열폭주 현상이 심각하며, 화재 발생 시 고온의 연기가 빠르게 확산된다. 당시 화재 진압에는 수 시간이 소요됐으며, 소방대원들은 배터리 내부 온도를 낮추기 위해 반복적인 냉각 작업을 시행해야 했다. 이처럼 기존의 장비와 인력만으로는 고열·밀폐 환경에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한편, 2025년 4월 초에는 강원도, 경북 지역 등지에서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에 산불이 급격히 확산됐다. 산림지역의 특성상 고지대와 협곡 등 도로 접근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불이 번지면 소방차와 인력 투입이 지연돼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다. 그 사이 불길은 주택가, 농촌, 산업시설로 빠르게 확산돼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피해까지 발생한다. 특히 헬기를 통한 공중 진압도 연무, 바람, 야간 등의 요인으로 인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25년 4월의 산불에서는 수백 헥타르에 이르는 산림이 사라졌고, 수십 채의 주택이 불에 탔다. 이 때문에 주민 대피령이 발령된 지역도 적지 않았다.
서로 다른 형태의 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화재와 산불 모두 기존의 소방 방식으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의 변화는 더 다양한 형태의 재난으로 이어지며, 기존 소방 체계는 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확장성 측면에서 점점 더 부족해지고 있다.
이 흐름 속에 첨단기술을 접목한 소방로봇과 산불진화로봇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됐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2020년 10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 고온 지역 진압 현장에 산불진화로봇을 투입해 화염을 제압하고,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휘본부에 전달해 의사결정의 효율을 높였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소방 대응의 새로운 방향성이 제시됐다. 단순히 로봇을 통한 기계적 자동화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로봇이 협력해 위기 상황을 함께 해결하는 ‘휴먼-로봇 팀’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로봇, 안전의 새로운 이름
도심 환경 속 복잡한 지하 구조물에 최적화된 소방로봇은 빠른 초기 진압과 정밀한 접근 능력을 바탕으로, 전기차 화재 대응 등 도심형 화재의 핵심 솔루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국내외 여러 기업들의 활발한 연구·개발을 통해 다양한 소방로봇이 등장했다. 이제 소방로봇은 단순한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실질적인 대안이다.
소방로봇은 원격 조종을 통해 소방대원의 직접적인 위험 노출을 최소화하며, 고성능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화재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고압의 소화 장비를 이용해 초기 진압의 성공률을 높인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화재에 특화된 냉각 및 분사 시스템은 열폭주 현상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재발화를 방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소방로봇은 AI 기반의 자율 주행 기능을 탑재해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화재에 대응한다. 스스로 화점을 탐지하고 최적의 진압 경로를 설정해 움직이는 지능형 로봇은 미래 소방 시스템의 핵심적인 요소다.
해외 기업의 사례
미국의 하우앤하우 테크놀로지(Howe & Howe Technologies)와 프랑스의 샤크 로보틱스(Shark Robotics)가 대표적인 소방로봇 개발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우앤하우 테크놀로지는 견고한 궤도형 로봇, ‘써마이트 RS3(Thermite RS3)’를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험난한 지형에서도 안정적인 이동과 강력한 소화 능력을 자랑한다.
하우앤하우 테크놀로지의 ‘써마이트 RS3’ / 사진. 하우앤하우 테크놀로지
샤크 로보틱스는 약 304m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 제어가 가능한 ‘콜러서스(Colossus)’를 개발했다. 모듈 방식으로 설계돼 작업 성격에 따라 새로운 모듈로 교체할 수 있으며, 부상자 수송, 귀중품과 소방 장비 수송 등이 가능하다. 이 로봇은 2019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진압에 투입돼 피해를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샤크 로보틱스의 ‘콜로서스’ / 사진. 샤크 로보틱스
이들 해외 기업은 군사용 무인 기술을 기반으로 높은 내구성과 정밀한 제어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이미 유럽 및 북미 소방 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실제 화재 현장에 투입돼 그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소방로봇 기술 발전 현황
국내에서도 급증하는 전기차 화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관련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로템이 2024년에 공개한 무인 소방로봇 ‘HR-셰르파(SHERPA)’는 국내 소방로봇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로템의 ‘HR-셰르파’ / 사진. 현대로템
HR-셰르파는 험준한 지형에서도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한 트랙 기반으로 설계됐으며, 원격 조종 시스템을 통해 소방대원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화재 현장에 투입된다. 고성능 열화상 카메라를 탑재해 어둠 속이나 연기가 자욱한 환경에서도 화점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으며, 고압 분사 시스템으로 초기 진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특히 전기차 화재의 핵심 위험 요소인 배터리 열폭주를 억제하기 위해 특화된 냉각·분사 기술은 HR-셰르파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레인보우로보틱스가 개발 중인 소방용 사족보행 로봇 또한 주목할 만한 기술이다. 네 개의 다리를 이용해 울퉁불퉁한 지형이나 장애물이 많은 공간에서도 안정적인 이동이 가능하며, 카메라, 센서, 소화 시스템이 일체형으로 구성돼 화재 현장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즉각적인 소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한편, 소방로봇의 실제 현장 적용을 위한 산·학·연 협력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로봇융합연구원과 국립소방연구원은 2024년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소방로봇의 실전 배치를 위한 시험 및 인증 체계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소방청은 현대자동차그룹과 협력해 무인 소방로봇을 전기차 화재 대응 솔루션으로 도입하는 등, 실제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은 연구 단계에 머물렀던 소방로봇 기술을 실제 재난 현장에 적용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질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을 향해
소방로봇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실제 화재 현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국내 대부분의 소방로봇은 해외와 달리 연구 개발 단계에 머물거나, 제한된 장소에서만 시범적으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향후 대규모 상용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적 지원과 현장 실증 기회 확대가 필수적이다.
도심 속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심각한 인명 피해와 사회적 불안감을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위협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더욱 빠르고 정확한 대응 기술이 절실하다.
기존 산불 진화 방식의 한계 타파
2025년 4월 초, 강원도와 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광활한 산림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한 번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산불은 우리나라처럼 산림 면적이 넓고 지형이 험준한 지역에서는 초기 진압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예측 불가능한 강풍과 급변하는 기상 조건이 더해져 진화 작업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처럼 산불 현장의 특수한 환경과 기존 인력 중심의 진화 방식은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소방대원의 안전 확보는 물론,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해결책 마련이 절실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안전하고 효율적인 대응 시스템의 핵심 대안으로 산불진화로봇이 주목받고 있다. 산불진화로봇은 일반적인 소방로봇과는 다른 기능에 특화돼 있다. 소방로봇이 실내외 화재, 특히 고위험 환경에서의 정밀한 환경 모니터링, 가스 감지, 다중 소화 분사 및 원격 조작에 중점을 둔다면, 산불진화로봇은 광범위한 산림 지역에서의 험지 주행 능력, 장시간 작동을 위한 내구성, 그리고 빠르게 확산되는 불길을 차단하기 위한 방화선 조성 기능에 중점을 두고 설계된다.
특히 최근에는 드론 기술과 결합된 산불 진화 시스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형 드론은 공중에서 넓은 범위의 화재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소화 약제를 투하해 초기 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군집 비행 기술을 활용하면 여러 대의 드론이 협력해 보다 광범위한 지역에 동시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 같이 한 기술과 기능을 갖춘 산불진화로봇은 향후 산불 대응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세계 각국의 산불진화로봇 기술 동향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산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첨단기술을 활용한 산불 진화 시스템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왔다. 미국, 독일, 유럽 등 산불 발생 빈도가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산불 진화 관련 로봇 및 기술이 개발되고 있으며, 일부는 실제 현장에 투입돼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미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산림 관련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오리건주립대학교에서는 산불의 조기 발견, 진화, 화재 현장 조사 등을 위해 다목적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며, 인공위성을 활용한 실시간 산불 관측 시스템을 운영해 효율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드라이어드의 AI 기반 산불 관리 시스템 / 사진. 드라이어드
독일의 드라이어드(Dryad)는 AI를 기반으로 한 산불 관리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AI 기반 드론은 산불 발생 시 신속하게 화재를 감지하고,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며, 실시간으로 화재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를 통해 초기 진압의 성공률을 높이고,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해진다.
밀렘로보틱스의 ‘멀티스코프 구조 하이드라’ / 사진. 밀렘로보틱스
유럽에서는 에스토니아의 밀렘 로보틱스(Milrem Robotics)와 네덜란드의 이노브폼(InnoVfoam)이 공동 개발한 산불진화로봇, ‘멀티스코프 구조 하이드라(Multiscope Rescue Hydra)’가 주목받고 있다. 이 로봇은 험준한 지형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며, 강력한 소화 능력을 바탕으로 실제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유럽에서도 산불 대응 기술 개발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의 산불진화로봇
국내에서는 2024년 4월의 대형 산불을 계기로, 기업과 공공기관을 불문하고 산불진화로봇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산림청은 '산불 대응 첨단기술 도입 사업'으로 산불진화로봇 도입 타당성을 연구하며, 국립산림과학원은 무인 장비 개발 방향 제시 및 드론 기반 감시 실험을 통해 미래형 산불 대응 시스템 구축을 준비 중이다. 아직 실전 배치보다는 드론 및 무인 기술 기반 인프라 확보에 초점을 맞춰, 향후 로봇 도입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퀀텀에어로는 드론 기술을 활용한 산불 감시 및 초기 대응 솔루션을 개발하며, 재난 대응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회사는 고성능 카메라와 센서를 탑재한 드론으로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실시간 정보를 제공해 신속하고 정확한 상황 판단 및 초기 진압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소방 활동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 산불 대응의 핵심
산불진화로봇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를 실제 산불 현장에 성공적으로 적용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현재 개발된 대부분의 산불진화로봇은 시범 운용 단계에 머물러 있거나, 특정 환경에서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광범위하고 예측이 어려운 산불 현장에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욱 심도 있는 연구 개발과 실증 시험이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진화로봇 기술의 미래는 매우 밝다. AI, 센서 기술, 로봇 제어 기술 등의 비약적인 발전은 보다 강력하고 지능화된 산불진화로봇의 개발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특히 드론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공중에서 신속하고 광범위한 화재 진압이 가능해지는 등, 산불 대응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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