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형적이고 복잡한 지형을 안정적으로 보행할 수 있는 사족보행로봇은 그 실용성이 입증돼 군사 분야의 활용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국내 정부와 기업 역시 해당 로봇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특히 지난 7월 LIG넥스원이 미국의 고스트로보틱스를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가 현대로템 등과 개발해 온 사족보행로봇 시제품을 육군에 납품해 사족보행로봇의 본격적인 상용화가 궤도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최근 있었던 두 사례를 통해 사족보행로봇의 군사 분야 투입 사례를 소개한다.
사진. U.S Air Education and Training Command
지난 2년간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 대만 해협에서 고조되는 미-중 갈등으로 최근 국제 정세는 이른바 ‘신냉전 체제’로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다.
유사이래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은 항상 존재했던 현상이며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戰爭史)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전쟁은 인류사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류는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최신의 기술을 전쟁에 적용해 왔고, 로봇 역시 다양한 방위산업 분야에 투입되고 있다. 당장 현재 진행형인 우-러 전쟁만 놓고 봐도 세간에서 UGV(무인지상차량), 사족보행로봇, 각종 무장을 장착한 드론이 투입된 하이테크 전쟁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군과 국내 기업 역시 급박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첨단기술을 군에 적용하고 있다. 일례로 방위사업청은 오래전부터 로봇을 비롯한 신기술 도입 촉진을 위해 신속시범사업을 진행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 최근 방위산업 전문 기업 LIG넥스원이 미국의 사족보행로봇 메이커 ‘고스트로보틱스(Ghost Robotics)’의 총 지분 중 60%를 인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또한,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 8월 13일(화), 약 2년에 걸쳐 현대로템 등과 협력해 개발한 대(對)태러작전용 사족보행로봇의 시제품을 방위사업청을 통해 육군에 납품했다.
사족보행로봇 실효성
사실 지상에서 로봇을 투입해 인력을 대체하기 위한 시도는 꽤나 오래됐다. 최초의 전투로봇 투입 사례는 2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전쟁 당시 독일군은 연합군 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원격 조종 지뢰 ‘골리아트(Goliath)’를 운용했다. 해당 로봇은 무한궤도로 이동하며 연합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투입됐지만, 당시 열약한 무선통신 기술의 한계로 제대로 된 운용에는 실패했다.
독일군이 운용한 원격 지뢰 ‘골리아트(Goliath)’ / 사진. Military History Maters
2차대전 이후에도 궤도를 장착한 UGV가 현장에 투입돼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는 등 다양한 로봇 투입 사례가 있다. 하지만 궤도 타입의 제품은 비정형 환경 주행에 있어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특히 평탄하지 않은 지형에서 방향 전환이 어렵고, 접지면적이 상실되거나 불연속적인 지형의 경우 정상적인 주행이 불가능하다.
사족보행로봇 ‘스팟(Spot)’으로 유명한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일찍이 비정형 험지 돌파를 위해 사족보행로봇 연구를 진행해왔다. 동사는 다양한 프로토타입 모델을 개발한 끝에 LS3, 빅독(Big Dog), 스팟과 같은 안정적이면서도 민첩한 이동이 가능한 사족보행로봇 개발에 성공했다.
국내의 경우 방위사업청이 지난 2006년 다목적 견마로봇 사업을 출범한 이래로 다양한 연구가 시행된 결과, 한국생산기술연구원(KITECH)에서 견마로봇 ‘진풍’ 개발이 진행된 바 있다.
다양한 레퍼런스 보유한 ‘비전60’
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설립된 고스트로보틱스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사족보행로봇 기술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전문 스타트업이다. 고스트로보틱스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개빈 케넬리(Gavin Kenneally) 박사는 2012년 캐나다 몬트리올 소재의 콘고디아 대학교(Concordia University)에서 메카트로닉스를 전공해 기계공학 학사를 취득했으며, 이후 펜실베니아 대학 MEAM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IROS 학술대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서 ‘전기기계적 로봇의 에너지 관리를 위한 다리 설계(Leg design for energy management in an electromechanical robot)’, ‘족보행 로봇을 이용한 문 열기, 계단 오르기의 준정적 및 동적 불일치(Quasi-static and dynamic mismatch for door opening and stair climbing with a aegged robot)’ 등 족보행 관련 연구를 발표한 이력이 있다.
고스트로보틱스 ‘비전60(Vision 60)’ / 사진. 고스트로보틱스
고스트로보틱스는 민첩성, 역량, 프로그래밍 용이성을 갖춘 직접 구동 사족보행 플랫폼 개발을 목표로 2016년부터 다양한 프로토타입 제품을 공개해 왔다. 동사는 일련의 시제품을 거쳐 현재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비전60(Vision 60)’을 출시했는데, 해당 로봇은 주변 환경에 대한 인식 기능을 활용해 자동적으로 보행 속도와 자세 조절 기능이 있으며, 다양한 장애물 극복이 가능하다. 또한 고기능 센서 탑재로 전면과 후면의 장애물 충돌 회피 기능을 탑재했고, 강력한 방진·방수(IP67 등급)와 내구성을 갖춰 실전에서 성능을 검증받은 로봇이다. 이와 더불어 모듈화된 부품 시스템으로 야전에서 편리하게 수리가 용이하다.
이미 2020년 미국 공군은 비전60을 기지 보안을 위한 정찰에 활용하기 위해 ABMS(Advanced Battle Management System)훈련에 투입했으며, 2022년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 공군 기지에 해당 로봇을 정식 배치했다. 이외에도 일본 육상자위대 역시 올해 1월 발생한 노토 지방 지진 피해 현장에 비전60을 투입해 시민들의 대피 경로를 정찰하는데 활용하는 모습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
고스트로보틱스 품고 글로벌 시장 진출한다
이번 인수에서 LIG넥스원은 기업인수목적기업인 LNGRLIC를 설립해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를 추진했으며,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투자 승인을 비롯한 모든 투자 절차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고스트로보틱스의 총 지분 5,540억 원 가운데 3,320억 원에 해당하는 지분 확보에 성공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개빈 케넬리 박사는 LIG넥스원의 고스트로보틱스 인수에 대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인 LIG넥스원의 일원이 돼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고스트로보틱스가 보유하고 있는 미래 기술력과 글로벌 비전이 세계시장에서 LIG넥스원의 성장과 번영을 가속화하는 핵심동력이 되길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한편, LIG넥스원은 미국 워싱턴 DC에 Collaboration Center를 연내 설립할 예정이며, 본격적으로 국내외 로봇 시장 진출을 준비한다는 계획이다. 고스트로보틱스 인수는 대한민국 군이 추진 중인 유무인복합천투체계는 물론 탐색/구조, 화재감시/진압, 장애인 안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LIG넥스원 신익현 대표는 “LIG넥스원과 고스트로보틱스는 각자의 사업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인력과 인프라를 보유한 ‘R&D 중심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라며, “이번 인수로 양사가 보유한 최첨단 기술을 융합해 국방-민수 분야를 아우르는 시너지를 창출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에서 새롭고 독보적인 성장기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전했다.
국군 맞춤형 사족보행로봇 개발
LIG넥스원의 고스트로보틱스 인수 소식에 이어 국내 대표 로봇 플랫폼 전문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역시 지난 2022년 8월부터 현대로템,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이하 신속원)과 신속연구개발사업 일환으로 추진해 개발한 대태러작전용 사족보행로봇 시제품을 육군에 납품했다. 이 납품은 신속연구개발사업 1호이자 사족보행로봇이 국군에 정식으로 납품된 최초 사례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 대태러 사족보행로봇 / 사진. 레인보우로보틱스
신속연구개발사업은 4차 산업혁명의 지식집약적 사업에서 채화된 첨단기술을 무기체계에 적용해 신속성과 수요군의 개발 및 운용성능 충족도를 구비하고, 시범운용을 거쳐 소요와 연계하는 사업이다.
앞서 2022년 4월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현대로템과 ‘국방로봇 분야 교류 및 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를 체결했으며, 양사는 신속원이 주관한 대태러 사족보행로봇 사업에 참여해 군 전력화를 목표로 한 방산용 다족보행로봇을 개발해 왔다.
대태러 로봇은 평시 및 전시 상황에서 대태러 임무수행은 물론 전투인력 대신 감시와 정찰 임무 등을 수행해 아군의 생존력을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해당 로봇은 높은 수준의 족보행 기술을 보유한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자체 기술로 제작돼, 향후 운용과 유지보수에 대해서도 긴밀하고 신속하게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육군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반영한 로봇 시스템 업그레이드 및 인공지능(AI) 기능을 강화해 ‘대한민국 육군 맞춤형 사족보행로봇’의 대량 양산 체계를 갖춰 대응할 계획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이번 사족보행로봇은 현 정부에서 추진중인 국방 4.0과 연계해 민간의 잠재적이고 성장력 있는 첨단기술이 국방분야에 신속하게 적용돼 미래전에 요구되는 첨단무기의 전력화를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국방 R&D의 발전을 가속화한 사례”라고 설명하며, “방위사업청과 국방신속획득기술연구원, 현대로템 등과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기에 2년만에 해당 제품의 시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추후에도 다각적인 협업을 이어가 AI 기능을 강화한 육군 맞춤형 사족보행로봇 양산에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022년 6월 ‘비정형 복잡한 환경에서 매니퓰레이터를 이용한 다중 임무용 다족형 로봇의 통합운동제어 기술 개발’ 국책과제에 주관기관으로 선정돼 오는 2027년까지 5년간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현재 과제를 통해 사족보행 로봇 시제품 보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차년도부터는 본격 양산을 통해 로봇 확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시사점
지속적인 고령화와 심각한 출산율 감소 문제는 일반 산업현장뿐 아니라 국가를 수호하는 방위산업 전반에서도 엄청난 인력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특히 연이은 군사적 도발을 지속하는 북한과 대치 상태인 한국의 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는 추후 국가 안보의 존속 위험과 국민의 생명권 문제로 직결될 수도 있다.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2022년도 국방개혁에서 목표로 하는 상비병력 50만 명 유지는 어려움이 예상돼, 미래 한국군 상비병력은 예비전력 정예화 및 국방민간인력 활용, 4차산업혁명기술을 적용한 첨단과학기술군을 전재로 최대 45만 명에서 최소 35만 명 유지가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들려오는 앞의 두 소식은 분명 국가 안보 차원에서, 또 국내 로봇 산업 발전에서 모두 유의미한 성과일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국방 사족보행로봇 대량 양산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여러 기술적 과제가 남아있다.
한편, 최근 중국 역시 관영 CCTV를 통해 소총 및 대전차 무기를 장착한 사족보행로봇 운용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로봇은 중국과 캄보디아의 연례 합동 군사 훈련인 ‘Golden Dragon 2024’ 중 투입됐으며, 직접적인 살상용 모델이 공개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향후 로봇과 AI가 주도하는 미래 군의 전쟁 수행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일 것이다. 인간이 주체(Subject)인 전쟁은 자율 무기체계로 전환될 것이고 이에 따른 여러 정치적, 윤리적 문제의 발생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라는 군사학 논고의 저자 푸블리우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의 말처럼 군의 로봇 상용화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된 이상, 국군과 국내 관련 기업들은 앞으로 부딫힐 여러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대비하며 국군의 로봇 상용화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