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iREX 2023에서 두드러진 부분 중 하나는 서비스 로봇 비중이 대폭 줄어든 만큼 산업용 로봇 부문에서 주목할 기술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방문객 규모가 대폭 축소했던 지난 회차를 제외하면 사실상 iREX의 ‘진면목’을 4년 만에 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본지는 iREX 2023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던 일본 산업용 로봇업계의 흐름을 전한다.
iREX 2023이 열렸던 도쿄빅사이트 / 사진. 로봇기술
지난 2023년 11월 29일(수)부터 12월 2일(토)까지 일본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렸던 ‘2023 국제로봇전(이하 iREX 2023)’이 전시기간 기준 누계 15만 여 명의 내방객이 방문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직전 회차가 코로나19로 일정이 조정되면서 2022년 3월에 개최됐으나 팬데믹 영향으로 누계 방문객 62,000여 명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 인파가 iREX 2023에 몰린 셈이다.
2년에 한 번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리는 iREX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로봇 전문 전시회로, 일본에 다수 포진한 메이저 로봇 기업을 포함해 대부분의 참가 기업들이 해당 전시회 사이클에 맞춰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만큼 국내에서도 많은 로봇 업계 관계자와 엔드유저들이 매 회차 전시장을 방문하고 있다. 일본 메이저 로봇 기업 대부분이 국내 시장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해당 전시회는 한 발 앞서 일본의 로봇기술을 가늠할 수 있는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iREX 2023은 국내 비즈니스 관계자들의 관심도가 특히 높았다. 이전 회차가 열렸던 2022년 3월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격리 조치를 실시했던 시기로, 3박 4일의 전시회 관람에 근 보름 이상의 시간을 소요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관람을 고사했던 만큼 이번 iREX 2023에 한국 참관객들의 방문이 몰렸다.
엡손 전시부스 / 사진. 로봇기술
폐쇄에서 개방으로, 일본 로봇업계의 변화
일본 특유의 폐쇄적인 기업 문화와 비즈니스 환경은 오래 전부터 유명하다. 과거 iREX를 참관했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주요 로봇 애플리케이션이나 제품마다 심심치 않게 붙어 있던 ‘노포토(No Photo) 마크’는 이 같은 일본 기업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데 로봇기술 취재진이 4년 만에 찾은 iREX 2023 현장의 분위기는 예년과 확연하게 달랐다. 일부 크리티컬한 기술을 제외하면 노포토 마크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대부분의 참가업체 스태프 또한 방문객 대응에 있어 적극적인 애티튜드를 유지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일본 로봇업계의 비즈니스 방향성 전환과도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일본 제조업은 오랫동안 모노즈쿠리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물건을 뜻하는 ‘모노(もの)’와 만든다는 의미의 ‘즈쿠리(づくり)’를 합친 모노즈쿠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일본 사회의 장인정신을 일컫는 말로, 공산품부터 자동차, 기계 부품, 장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조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일본 제조업계가 오랫동안 쓸 수 있는 높은 완성도의 물건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공급자 중심의 폐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한 원인이기도 하다.
이번 iREX 2023 현장에서 만나 본 일본 제조업체는 더 이상 ‘고집스러운 장인’의 모습을 고수하지 않았다. 쌓아온 장인의 기술력으로 고객사가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주는 비즈니스, 요컨대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의 비즈니스 전환 기조가 확연히 체감됐다.
가와사키로보틱스 전시부스 / 사진. 로봇기술
가와사키로보틱스(이하 가와사키)는 그 변화가 두드러지는 기업 중 하나였다. 그간 iREX에서 자사가 주력하던 자동차 제조 공정 데모를 부스 메인에 내세웠던 이 회사가 이번에는 가와사키의 현재와 미래를 테마로 새로운 콘셉트의 부스를 구성했다. 그중 주목해야 할 데모는 스폿 용접과 비전 검사, 도장 애플리케이션이다. 일견 기존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제조 로봇 애플리케이션이지만, 그 속에는 가와사키가 고객사의 니즈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한 여러 기술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동차 패널 스폿 용접 데모에서 살펴볼 부분은 용접 지그의 역할을 대신하는 소형 다관절로봇이다. 이 소형 다관절로봇 RS025S 모델은 기존에 없었던 기종이지만 고객사의 니즈에 대응해 가와사키가 새롭게 개발했다. 일반적인 고정형 용접 지그와 달리 다차종의 자동차 패널 스폿 용접 작업이 가능하며, 스폿 용접 작업을 수행하는 가와사키로봇과의 동기 제어로 작업 사이클 타임도 단축시켰다.
스폿 용접 데모(가와사키로보틱스) / 사진. 로봇기술
이어 외관 검사 데모에서 특징적인 기술은 가와사키가 특허를 획득한 고속 외관 검사 기술이다. 제품을 스캔하듯이 멈추지 않고 이미지 데이터를 획득하는 라인 스캔 카메라 방식의 외관 검사 작업은 지정한 범위의 이미지 데이터를 촬영하고, 다음 영역으로 넘어가는 에어리어 스캔 카메라 방식보다 더욱 빠르게 검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시간 대비 정해진 이미지 데이터를 처리하는 라인 스캔 카메라로 대상물을 촬영할 때, 제품의 곡면이나 굴곡, 로봇의 가감속 등의 이유로 측정치가 고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가와사키는 로봇의 속도에 맞춰 라인 스캔 카메라의 이미지 처리량을 맞춰주는 특허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iREX 2023에서 가와사키는 로봇에 비전을 탑재해 대형 작업물의 외관을 검사하는 데모와, 고정된 비전에 소형 자동차 백미러를 핸들링해 외관을 검사하는 두 가지 데모로 해당 특허 기술의 강점을 소개했다.
가와사키 특허 기술을 적용한 외관 검사 데모(가와사키로보틱스) / 사진. 로봇기술
이 밖에 도장 로봇 데모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기존에 가와사키 도장 로봇 애플리케이션에 사용했던 R타입 서보톰보우(Servo Tombow, 다관절로봇을 중심으로 워크피스를 도장 부스에 투입하거나, 도장 완료된 제품을 반출하는 회전기구)는 기존의 360° 회전 방식에서 링크가 접히는 구조로 변경해 회전 반경을 좁혔다.
구조 변경으로 작업 반경을 좁힌 도장 로봇 데모(가와사키로보틱스) / 사진. 로봇기술
가와사키가 해당 데모 존에 전시한 데모들은 모두 고객사의 니즈에 맞춰 개발, 실제 현업에 적용한 시스템들로, 현재 가와사키는 글로벌 시장에서 파트너사 및 고객사의 니즈 대응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같은 가와사키의 기조는 한국 로봇업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행보이다. 한국가와사키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한국가와사키는 시스템 파트너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특히 시장의 니즈가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능동적인 기술 개발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나치후지코시는 다른 일본 로봇 메이커보다 한 발 빨리 고객사의 니즈에 맞춰 발 빠르게 신규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던 기업이다. 지난 2016년 전후로 국내 대기업의 베트남 프로젝트 때 그 진가를 발휘하면서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알렸다. 회사는 이번 iREX 2023에 6개의 테마로 총 27개에 달하는 데모 존을 구성해 참가했다. 나치후지코시 로봇 애플리케이션 부문의 전문가 그룹인 엔케이알(NKR) 관계자는 그중 AI 학습 기반 커넥터 체결 애플리케이션을 가장 주목해야 할 데모로 선정했는데, 이 기술은 나치후지코시와 한국의 서강대학교, 일본의 동경대학교가 산학 협력으로 개발하는 기술이다. AI 학습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위치 값을 판단하고, 기존에 학습한 데이터를 적용해 커넥터를 체결하는 기술로, 해당 데모에서는 체결해야 하는 커넥터의 위치가 계속 변화함에도 별도의 티칭 없이 커넥터 위치로 찾아가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AI 학습 기반 가변 위치 커넥터 체결 데모(나치후지코시) / 사진. 로봇기술
최근 리니어 모션 시스템 LCMR200으로 국내 배터리 자동화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야마하는 LCMR200과 트래버스 유닛을 조합해 더욱 강력한 확장성을 자랑하는 자동화 순환 물류 시스템을 소개했다. 해당 데모 시스템에 적용된 트래버스 유닛은 야마하의 한국 시스템 파트너인 아이뎀이 고객사의 니즈를 반영해 적극 제안, 개발한 솔루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날 야마하 전시 부스를 찾은 아이뎀 관계자는 “야마하의 최신 제품인 트래버스 유닛이 포함된 이번 데모 시스템은 참관객들이 LCMR200 전 제품 라인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는 LCMR200과 트래버스 유닛을 활용해 공정 간에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어필한 좋은 사례로서, 한국 시장에도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설명했다.
LCMR200과 트래버스 유닛을 이용한 데모 시스템(야마하) / 사진. 로봇기술
산업용 로봇 시장 확대의 키워드 ‘조작성’
산업용 로봇의 안전에 대한 담론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던 2010년도 초중반에 협동로봇의 셀링 포인트는 안전보다 조작성에 있었다. 대부분의 협동로봇이 공통적으로 구현했던 직접교시 기능은 일반 산업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로봇 자동화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이미 높은 수준의 공정 이해도를 가지고 있던 여러 엔지니어들에게 직관적으로 로봇을 조작할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함으로써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시기는 산업용 로봇이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로봇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시장 확대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는, 사실 협동로봇이 아닌 일반 산업용 로봇 메이커들도 이미 이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로봇의 전문성과 기능을 더욱 고도화하는 데 집중했던 만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직접교시를 이용한 용접 티칭(다이헨) / 사진. 로봇기술
이번 iREX 2023은 메이저 로봇 메이커들이 밀집한 일본 로봇업계가 본격적으로 산업용 로봇 대중화를 선언한 자리였다. 일본 로봇기업들은 기능의 고도화와 동시에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는 조작 편의 기술들도 다수 선보였다. 그중 다이헨의 용접 티칭 기술은 백미였다. 다이헨은 파나소닉과 더불어 용접과 로봇 두 분야의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iREX 2023에서 회사는 아크 용접에 최적화된 로봇 기종과 시스템 구성, 기능을 선보였지만 그중 특히 인상적인 기술은 태블릿PC로 사진을 촬영해 용접 궤적을 생성하는 티칭리스 시스템이다.
지난 2022년 말 다이헨이 처음 공개했던 이 기술은 태블릿PC로 작업 공작물을 촬영하고 용접할 부품을 선택하면 자동으로 로봇 프로그래밍을 생성할 수 있다. 태블릿PC로 촬영한 이미지 상에서 용접 시작 버튼을 누르고 로봇의 이동 지점을 그린 뒤 완료 버튼을 누르면 로봇 프로그래밍이 완료된다. 대부분의 중소 용접 기업들은 고객사의 의뢰에 따라 다양한 공작물을 용접하기 때문에 로봇을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고 로봇 티칭을 위한 전문 인력을 고용하거나 신규로 육성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다이헨의 티칭리스 시스템은 현장의 용접공이 새롭게 로봇 프로그래밍을 익히지 않고도 신속하게 용접 로봇을 운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진 촬영으로 용접 로봇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티칭리스 시스템(다이헨) / 사진. 로봇기술
협동로봇 비즈니스에 힘을 싣고 있는 야스카와전기는 협동로봇을 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유용한 기능을 소개했다. 일반적인 직접교시와 스마트펜던트를 활용한 티칭을 참관객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카메라 촬영만으로 품종을 자동으로 등록하고 피킹 작업 프로그램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비전 패키지도 함께 소개했다. 비전 패키지는 야스카와전기 협동로봇에 카메라와 LED 모듈을 부착해 피킹 프로그램을 쉽게 생성하는 패키지로, 카메라는 스마트팬던트로 조작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야스카와전기는 협동로봇 애플리케이션 구축에 필요한 여러 엔드 이펙터 및 주변기기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플러그&플레이 키트 라인업도 함께 전시했다.
참관객이 직접 협동로봇을 티칭하는 모습(야스카와전기)
한편 화낙 또한 별도의 로봇 프로그래밍 없이 용접 로봇 애플리케이션을 구성할 수 있는 제로 티치 아크 용접 기술을 공개했다.
제로 티치 아크 용접 기술(화낙) / 사진. 로봇기술
숨겨진 협동로봇 강국 ‘일본’
전 세계 각국의 협동로봇을 한 줄로 표현하자면, 협동로봇의 시초인 유니버설로봇이 탄생한 유럽, 대기업과 상장회사를 아우르며 다양한 협동로봇 메이커를 보유한 한국, 탄탄한 내수 시장과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한 중국.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최상위권 협동로봇 메이커를 배출한 대만, 그리고 메이저 로봇 메이커들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의 협동로봇 산업은 메이저 로봇 메이커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화낙, 야스카와전기, 가와사키로보틱스, 덴소, 야마하, 시바우라머신, 나치후지코시 등 거의 모든 메이저 로봇 메이커들이 자사 로봇 라인업의 일환으로 협동로봇을 출시하고 있다.
화낙은 2016년 이후부터 iREX에 참가할 때마다 협동로봇 비중을 키워왔다. / 사진. 로봇기술
일반적으로 협동로봇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협동로봇 전문 메이커를 떠올린다. 반면 일본 메이커의 경우 협동로봇보다 일반 산업용 로봇 제조사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기 때문에 협동로봇 부문에서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의 협동로봇 산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협동로봇 산업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메이커는 화낙이다. 가반하중만 놓고 보면 국내 대형 협동로봇을 대표하는 두산로보틱스의 두 배 수준인 50㎏ 모델까지 라인업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iREX 2023에서는 식품 업계를 겨냥한 전용 사양의 모델도 선보였다. 협동로봇 붐이 불었던 2010년대 중후반과 달리 최근에는 판매량도 무섭다. 지난해 화낙이 협동로봇 생산 비중을 5%에서 10%로 두 배 확대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기업들의 회계연도가 매해 3월인 점에 비춰 아직 2023년도의 구체적인 판매량 파악은 어렵지만, 일본 로봇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화낙이 협동로봇 출시 이후 약 17,000대가량의 누적 판매량을 달성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협동로봇 코보타로 유명한 덴소도 빼놓을 수 없다. 덴소는 코보타 프로와 코보타 라보를 iREX 2023 부스 전면에 배치하고 주요 애플리케이션 기술 데모 또한 협동로봇으로 구성했다.
코보타 프로(덴소)
6/12㎏의 가반하중을 지닌 코보타 프로는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보다 고속, 고반복정밀도 작업에 초점을 맞춘 협동로봇이다. 가반하중 12㎏ 모델 기준 2,500㎜/s의 TCP 속도를 갖췄고, 반복정밀도는 ±0.04㎜에 달한다. 고속 작업 동작 시 일반 산업용 로봇 수준의 스펙을 보여주는데, 독자적인 고강성 토크센서 탑재로 가속도를 향상시켰다.
한편 일본은 한국보다 양팔로봇을 산업 자동화에 적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일본의 독립행정법인인 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와 카와다로보틱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넥스테이지(NAXTAGE)는 대표적인 일본의 양팔 제조용 로봇이다.
ABB의 유미(YuMi)나 가와사키로보틱스의 듀아로(duAro)와 같이 양팔로봇은 대부분 작업자와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협동로봇의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번 iREX 2023에서 시바우라머신이 공식적으로 런칭한 두 가지 종류의 양팔로봇 또한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협동로봇 관련 안전인증을 획득했다.
시바우라머신은 휴머노이드와 스카라 두 가지 타입의 양팔 협동로봇을 출시했다. 휴머노이드 타입은 각 팔 당 7축씩, 총 14개 축으로 구성되며 몸통 부분을 포함하면 총 16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팔 하나당 들 수 있는 작업물의 무게는 6㎏이며, 두 팔을 이용해 한 번에 10㎏의 물체까지 들 수 있다.
휴머노이드 타입 양팔 협동로봇과 스카라 타입 양팔 협동로봇(시바우라머신) / 사진. 로봇기술
스카라 타입 양팔 협동로봇은 휴머노이드 타입 대비 범용적인 애플리케이션에 적합하다. 총 9축으로 휴머노이드 타입 대비 관절 자유도는 낮지만 시스템 비용이 약 절반 수준으로 경제성이 높다.
이 로봇들은 태블릿PC를 이용해 티칭이 가능하며, 기본적으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블럭 기반 프로그래밍을 제공한다. 보다 섬세한 프로그래밍 작업을 요구하는 숙련된 전문가를 위해 파이썬 코드로도 로봇을 가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로봇과 온라인으로 연결해 실시간 가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블럭 코딩과 파이썬 코딩을 모두 지원하는 시바우라머신의 양팔 협동로봇(시바우라머신) / 사진. 로봇기술
일본의 물류 자동화는 트럭에서 시작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에너지 절감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이슈는 다루지 않았다. 물류 자동화 또한 지역을 넘나드는 보편적인 관심사이나, 일본 로봇업계는 그 안에서도 조금은 다른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 돋보이는 부분은 트럭에서부터 컨베이어로 박스를 옮기는 상하차 애플리케이션이다. 무진을 필두로 이미 몇 해 전부터 일본 로봇기업들은 트럭 상하차를 로봇으로 자동화하는 콘셉트 데모를 선보였는데, 이제는 실제 필드에 적용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가와사키가 2년 전에 출시한 상하차 로봇 시스템 밤보(Vambo)는 일본의 모 물류센터에 실제로 투입됐으며, 운용 데이터가 축적되면 한국을 포함해 해외 시장에도 공급할 예정이다.
밤보는 박스 이적재를 위한 툴과 다관절로봇, AMR, 그리고 가변 컨베이어로 구성된다. 검품장에 트럭이 정차하면 밤보가 비전으로 트럭 컨테이너 안에 있는 박스를 인식해 컨베이어로 옮기거나 반대로 적재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가변 컨베이어는 물류 창고 컨베이어에 맞춰 높이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외부 시스템 구성없이 물류창고에 바로 투입할 수 있다.
밤보(가와사키로보틱스) / 사진. ,로봇기술
한편 iREX 2023에서 공개한 밤보는 2년 전 가와사키가 처음 출시했던 기종 대비 작업 속도가 30%가량 더 향상된 것이 특징이다.
이 분야의 주요 기업 중 하나인 무진 또한 트럭 상하차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리니어와 진공 그리퍼를 이용해 박스를 꺼내는 트럭봇(Truckbot)으로, 이 로봇 시스템은 무진이 이 분야에서 가진 노하우를 잘 보여준다. 트럿봇은 물류 현장에서 가장 큰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하역 작업을 비용 효율적으로 간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다관절로봇을 사용하지 않고, 박스를 흡착해 물류 라인과 직결되는 컨베이어로 박스를 넘겨 이송하는 이 시스템은 상하차 자동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트럿봇(무진) / 사진. ,로봇기술
로봇 자동화를 풍부하게 하는 요소기술
혁신적인 로봇 주변기기는 로봇 애플리케이션의 완성도를 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는 새로운 형태의 엔드 이펙터나 비전, 또는 진공 발생기와 같은 여러 기술 요소들이 포함될 수 있다.
iREX 2023에서 화낙은 오래 전부터 자사가 강점을 보여왔던 델타로봇 ‘겐코츠’ 시리즈와 자사의 소프트 그리퍼를 조합해 식품 산업 픽 앤 플레이스 분야에서의 경쟁력이 더욱 강해졌음을 알렸다.
화낙의 소프트 그리퍼는 핑거 부분이 모듈로 구성되어 있어 유연한 그리퍼 디자인이 가능하다. 그리퍼를 직접 로봇에 장착하는 방식 외에 핑거 모듈과 다채로운 부품을 조합하는 것이 가능해 용도에 따라 핑거의 개수나 간격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다.
자유로운 설계가 가능한 소프트 그리퍼와 적용 데모(화낙) / 사진. 로봇기술
다이쇼산교는 국내 기업인 하비스탕스의 3D프린팅 그리퍼 솔루션을 iREX 2023 현장에거 전시했다. 일본 내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상사회사인 다이쇼산교는 지난해 하비스탕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2023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에 3D프린팅 기반 그리퍼 솔루션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애플리케이션에 따라 맞춤형 그리퍼를 제공하는 하비스탕스의 그립팜(GriPalm)은 일본에서도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이쇼산교 사토 코타로 매니저는 “일본의 자동화 업계에서도 그립팜 솔루션의 독특한 콘셉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므론의 협동로봇 시스템 파트너인 센슈전업에 납품 사례를 만든데 이어 현재는 미쓰비시전기오토메이션과도 로봇 그리퍼와 관련해 파트너십 체결을 추진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3D프린팅으로 만든 그리퍼(다이슌 / 사진. 로봇기술
한편 로봇 자동화 시스템의 볼륨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는 다양한 유틸리티 기술들도 iREX 2023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그중 IAI가 오는 2024년 여름에 출시를 예정하고 있는 콤팩트 타입 진공발생기는 특히 많은 참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근 공압을 기반으로 한 여러 자동화 애플리케이션에서 외부 컴프레서에 의한 설치 공간 문제와 복잡한 공압 라인 구성 등의 애로를 해소하기 위해 콤팩트한 진공발생기가 부상하고 있다. 이번에 IAI가 공개한 진공발생기는 진공 발생과 파괴를 하나의 유닛으로 수행할 수 있는 콤팩트한 제으로, 동사는 실제 이 진공발생기를 탑재해 별도의 컴프레서와 공압 배관 없이 심플하게 자동화 시스템 데모를 구축해 전시했다.
초소형 진공발생기와 해당 진공발생기를 이용한 자동화 데모(IAI) / 사진. 로봇기술
한국 로봇기업들이 iREX에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
일본의 여러 산업 전시회에 대한 최근 국내 제조업계의 평가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실제로 20~30년 전부터 꾸준히 일본 전시회를 참관해온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우리나라 제조업 관계자들이 일본의 부품이나 기계 장비를 배우기 위해 일본 전시회에 적극적으로 참관했고, 실제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지만, 현재는 그 갭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라고 감상을 전하기도 했다.
이번 iREX 2023에서 이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제품이나 기술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15만 명에 달하는 방문객들이 iREX 2023 현장을 찾은 이유는 명확하다.
일본의 모든 메이저 로봇 메이커들이 총출동하는 이 전시회가 곧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iREX 2023에서는 익숙한 데모 애플리케이션의 면면 속에서 역사를 지닌 글로벌 로봇 메이커들의 노하우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나볼 수 있었다. 같은 제품이라도 더 빠르고, 강력하며, 콤팩트한 기종들이 등장했고, 로봇을 더 잘 운용하기 위한 여러 솔루션 기술들도 공개됐다.
오므론 부스 데모 / 사진. 여기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다. 야스카와전기, 나치후지코시, 가와사키, 화낙 이 네 개의 일본 메이커가 70% 이상에 달하는 다관절로봇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국내 로봇 자동화 산업 구조에서 우리 기업들이 강점을 지니는 부분은 이 로봇을 활용해 더 높은 생산성의 공정을 구축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실제 공정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기술, 기능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캐치하고, 접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iREX는 우리 로봇 자동화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의 단초를 찾을 수 있는 일종의 보석함이 될 수 있다.
이번 iREX 2023에 공개됐던 수많은 기술들이 한국 로봇기업의 우수한 로봇 응용기술을 만나 제조업 생산성 향상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