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로봇학회 창립 30주년 참관기
로봇, 기술에서 상용화로 가려는 길목에서
일본로봇학회 30주년 특별강연 ‘로봇학 100년의 계획’
일본로봇학회 회장(立命館대학 川村貞夫교수, 左)과 (주)NT 리서치 김경환 대표이사(右)
1983년에 설립되어 일본 로봇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일본로봇학회(RSJ)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지난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삿포로 컨벤션 센터에서 일본로봇학회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강연회(RSJ2012)가 개최되었다. 일본 로봇기술의 현주소와 로봇 상용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현장에 (주)NT 리서치 김경환 대표이사가 함께했다.
시작하며
일본은 자타공인의 로봇 강국으로서 현재 제조업용 로봇 10대 중 적어도 2대는 일본에서 가동 중이며, 로봇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72년에 업계 중심의 일본로봇공업회(JARA), 1983년에 학계 중심의 일본로봇학회(RSJ)가 설립되어 일본 로봇기술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9월 17일부터 20일까지 삿포로 컨벤션 센터에서 RSJ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강연회(RSJ2012)가 개최되어 필자도 큰 기대를 가지고 참석했다. 일본 로봇기술의 현주소를 살펴볼 수 있고, 상용화에 따른 고민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출장이었다.
우리나라는 2003년에야 비로소 한국로봇학회(KROS)가 창립되었으니 일본보다 학회 창립이 20년 늦은 셈이다. RSJ는 KROS보다 학회 회원수도 10배 가량 많다.
원자력 로봇의 시사점
일본은 1980년대에 이미 극한환경에서 원격조종할 수 있는 보행 로봇을 국가적으로 개발했다고 선전했으나, 정작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방사능 오염 지역에 투입되어 원전 내부 영상을 보내온 로봇은 미국 iRobot사의 군용로봇 팩봇(Packbot)이었다. 일본의 치바 공업대학에서 개발한 재난구조 로봇 Quince가 개량을 거친 후 원전에 투입된 것은 사고로부터 4개월이 흐른 뒤였고, 투입되자마자 기능 고장으로 미션 수행이 어려워졌다.
이번 RSJ2012에서는 원전 사고 후 신속하게 자국 로봇을 투입하지 못한 원인 분석과 반성이 이어졌다. 로봇의 요소기술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도 처음부터 실용화를 목표로 하지 않고 시제작만 해서는 대형 재난 사고에는 무력하다는 것이 교훈이었다.
한편, 다양한 재난구조 로봇이 투입되어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모니터링과 원격조종으로 오염 제거 작업을 했기 때문에 원전 사고가 이 정도라도 수습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 재난은 예상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해 상황을 가정하고 로봇을 개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기술적인 논의가 있었다.
원전에 대한 찬반 논란이 여전하고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로는 마찬가지인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에서 유사 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국산 로봇은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도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고 재난구조 로봇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한국에서도 국가 프로젝트로 개발은 되었지만 과연 사고 현장에서 유용한지는 매우 의문이다).
사실 원자력 로봇은 재난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된 특수용도의 로봇이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차세대 로봇의 개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잘 정비된 공장 환경에서 사용하는 제조업용 로봇은 첨단 기술 개발보다는 응용과 시장의 확대가 더욱 시급한 상황이다.
한편, 현재의 로봇기술로는 로봇청소기의 기능을 능가하는 지능적인 가사도우미 로봇의 상용화란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상용화 측면에서 제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의 중간적인 성격을 띤 원자력 로봇이나 의료 로봇 등의 ‘전문 서비스 로봇’은 가까운 시일 내에 상용화될 수 있을까? 원자력 로봇은 방사능 오염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로봇 투입의 정당성이 분명하고,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능·성능 사양의 구현이 우선이다. 계단이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로봇의 이동 능력, 원전 내 다양한 형태의 밸브 조작 능력, 외부로 영상 전송과 원격조종을 하기 위한 무선통신의 신뢰성도 필수적이다. 이러한 종류의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재해 현장은 물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건설업계의 무인시공이나 극한 지역의 무인탐사 등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림1>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에 투입된 일본제 로봇 Quince인데, 후쿠시마원전 2호기의 1층과 5층간을 넘나드는 성능을 발휘하다가 통신 두절로 인해 3층에서 동작 중지, 미션 중지 상태에 있다. 연구 현장에서 언뜻 완벽하게 보이는 로봇이라도 적용 현장에서는 치명적인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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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1. (a)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투입된 일본제 재난구조 로봇 Quince (b)Quince에 장착된 전방 카메라로 보내온 계단 주행 영상
고령화 사회의 대안
2008년부터 리스/렌탈 서비스를 하고 있는 HAL이 대표적인 로봇이다. HAL은 처음에는 인간의 자연근력을 보조해주는 착용형 로봇으로서 개발되었으나, 적당한 어플리케이션을 찾지 못하다가 몇 년 전부터 하체 근력지원과 재활을 용도로 ‘HAL복지용’을 제품화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가 하체에 로봇 기구를 착용한 후 움직이면 내장된 생체 전위 센서(근전도 센서)와 발바닥에 있는 반력 센서가 착용자의 운동 의도를 알아내고는 내장된 모터를 움직여 인공적인 근력을 발생시킨다. 보행/기립 동작 시에 경험적으로 근력 지원 효과가 입증되고 있어서 일본 국내외 시설에서 점차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경험적인 재활 효과일 뿐 재활 프로그램으로 의학적 성능까지 입증된 것이 아니어서 아직 재활 시장의 반응은 더딘 편이라고 한다. 더욱이 착용하는 로봇 기구는 모두 회전 관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인간의 관절은 회전 운동뿐 아니라, 회전 중심이 움직이는 병진 운동도 겸하기 때문에 현재의 회전 기구만으로는 편한 착용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도 단점이다. 하지만 상업자본과 결합해 병원과 노양시설에서 임상중이어서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이 밖에도 <그림2> (b)와 같이, 우울증 치유와 스트레스 감소를 위한 바다표범 형태의 로봇인 파로(PARO)가 있다. 표면에 촉각 센서가 있어서 쓰다듬는 동작에 반응한다거나 제한적이지만 사람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서 정신적·생리적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한다. 가격은 300만원대로 아직 비싼 편이지만, 지난번 후쿠시마 원전 피해지역에 보급되는 등 시범 서비스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RSJ2012에는 이러한 개호 서비스 로봇의 적용기술이 다양하게 소개되었다. 휴대전화가 적당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플랫폼이 정착되고 나서야 급성장했듯이, 로봇기술의 급성장과 시장 확대 또한 ‘적당한’ 플랫폼의 정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적당한 플랫폼은 학계의 요소기술을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시험대(테스트베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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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 (a)HAL복지용의 임상시험 (b)PARO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난소의 아동들
RSJ2012 세션의 트렌드
RSJ2012에서는 133세션에 걸쳐 총 853편의 논문발표가 이루어졌다. 세션이름만 보더라도 일본의 로봇 연구 경향을 알 수 있는데, 세션을 필자 나름대로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 응용 분야 : 산업용 로봇, 작업용 로봇, 원자력 로봇, 재난구조 로봇, 인간 지원/근력 지원 로봇, 의료재활 로봇, 내시경 수술 로봇, 바이오 조작/미세 작업 로봇, 우주 로봇, 비행 로봇, 옥외작업/건축 로봇, 교육용 로봇, 안심(安心) 로보틱스, 카(Car) 로보틱스 등
- 이동 로봇 분야 : 로봇 제어, 경로/행동 계획, 이동 지능, 차륜 도립진자형 로봇, 멀티 로봇 시스템, 공간 계측과 지도 관리 등
- 인간형 로봇 분야 : 휴머노이드, 보행 로봇, 인공근육 액츄에이터, 생체 모방 로봇, 생체 신호 인터페이스, 운동 계측 등
- 휴먼 인터페이스 & 소프트웨어 분야 : 인간-로봇 상호작용, 협조제어, 인간과 로봇의 공생학, 공간 지능, 로봇 소프트웨어, 디지털 휴먼, 데이터 공학 로보틱스, 행동 학습을 위한 확률 로보틱스, 클라우드 시대의 인터넷 로봇, 햅틱 장치, 원격조작용 인터페이스 등
- 요소 기술 : 액츄에이터, 로봇 매커니즘, 로봇 팔, 로봇 핸드, 유연물의 조작기술, 로봇 청각, 로봇 촉각, 학습제어, 로봇비전, 인지발달 로보틱스, 마이크로-나노 로봇 등
이동 로봇 분야의 권위자인 유타신이치(油田 信一) 교수는 ‘로봇학, 100년의 계획’이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로봇기술은 미래 사회의 변혁을 주도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논문만을 양산하는 연구 대신 사회가 바라는 사양을 반영한 로봇 개발에 임해주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몇 년 전부터 일본 츠쿠바 시에서 개최하고 있는 실제 야외 환경에서 이동 로봇의 자율 주행을 경합하는 ‘츠쿠바챌린지’ 행사를 소개했다.
수많은 세션 중에 주목할 만한 세션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관심을 끈 세션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인공근육 액츄에이터/센서 시스템 : 개호 로봇이나 홈 로봇 등 인간과 접촉하거나 협조하는 로봇에서는 소형/경량이고 백드라이브가 되는 액츄에이터, 플랙서블하고 2차원적인 센서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술은 인간의 생체 근육을 지향하고 있는데 인공근육 액츄에이터/센서 시스템이라고 불린다. 이번 학회에서는 기능성 고분자를 이용한 액츄에이터/센서, 운동성 바이오 재료를 이용한 로봇, 소프트 액츄에이터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 클라우드 시대의 로봇 서비스 : 서비스 로봇은 로봇 본체의 서비스에서 네트워크를 이용해 클라우드와 연계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클라우드와 연계하면 로봇의 기능/성능의 향상을 기할 수 있다. 한편, 스마트폰은 카메라뿐 아니라 많은 센서가 탑재되어 클라우드와 연계가 편리하다. 이번 강연회에서는 클라우드를 연결하는 프로토콜 사양, 서비스 사례, 지령 방식, 지능의 분산 아키텍처 등이 발표되었다.
- 확률 로보틱스 : 인간과 로봇과의 상호작용이나 실세계 이해와 관련된 확률 모델 및 통계적인 기계학습이 다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작업 스킬의 학습, 모방 학습, 동작/환경의 분절화, 동작 인식, 행동의 기호화, 일반 물체 인식, 멀티모달 학습, 언어 획득, 대화 전략 최적화, 강화 학습, 능동 학습에 관한 발표가 있었다.
- 근골격 로보틱스 : 생체의 기구나 근육 배열에 착안해 근 제어적인 특성을 응용한 연구성과가 발표되었다. 근육형 구동, 2관절근 등의 연구에서 생물 고유의 고도한 제어 원리를 규명하여 휴머노이드, 복지기기, 인간/기계 협조 시스템에 응용한 발표가 주종을 이루었다.
- 바이오 조작 : 나노미터에서 센치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의 대상물을 조작하는 기술로, 바이오나 의학 분야와 연계하여 세포조작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생체재료응용기술, 단일세포조작, 세포내의 유전자도입, 세포분리/배양/고정/조작기술, 세포조직의 조립/재구성 기술 등에 대한 발표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 중에서 흥미롭게 본 것은 지난 5년간 경제산업성과 NEDO에서 진행해 온 ‘차세대 로봇지능화 기술 개발 프로젝트’이다. 단기간에 고도화된 로봇지능을 실현하기 위해 기반 기술, 작업지능 모듈, 이동지능 모듈, 커뮤니케이션지능 모듈을 개발하여 이번 강연회에서 총괄적으로 성과 발표가 있었다. <그림3>은 이 프로젝트에서 작업 지능을 구현하기 위해 미츠비시전기와 쿄토대학이 진행한 연구결과이다. 4대의 6축 로봇 팔을 이용해 비정렬 부품을 공급하고 조립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부품 트레이 위에 흩어진 부품을 정렬한 후 그 부품 트레이가 자동조립 시스템으로 반송되어 부품에서 제품으로 조립하는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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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3. 차세대 로봇지능화 기술 연구개발 프로젝트 중 작업지능 부문 (a)정렬 (b)조립 (RSJ2012AC3J1-2 논문 인용)
결론
일본은 로봇분야에서 풍성한 레시피(조리법)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RSJ2012에서도 여실히 확인되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제약조건을 둔 나머지, 현장에서는 사용되기 어려운 연구결과들도 많았다. 학회기간 내내, 수많은 기술의 레시피들을 어떻게 하면 세련되고 시스템 내에 안정적으로 통합할 수 있을까, RSJ 초창기처럼 산업계와의 밀접한 연계를 복원해야 하지 않는가 등 RSJ의 미래 방향에 대한 토의가 이어졌다. 우리 로봇학계와 산업계도 먼저가는 RSJ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
(주)NT 리서치 김경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