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없었던 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새로운 시장의 개화 가능성을 내포한다. 어떤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면서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또 어떤 기술은 폭발적인 시장 파급력을 바탕으로 킬러 앱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기술들 중 당장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내는 사례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첨단 기술과 혁신은 조금 더 미래의 청사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서 파급력을 가지기까지 감내해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낯선 기술을 사용자들에게 설명하고, 왜 이 기술이 필요한지를 납득시켜야 하며, 사용자가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과 가격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떨 때는 제품이 채 나오기도 전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규제 때문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례는 오히려 양반이다. 어쩔 때는 관련 규제나 검증 기준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는 범세계적인 ‘메가트렌드’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분야도 있다. 예컨대 로봇 분야에서는 드론이나 협동로봇이 대표적이다. 드론이나 협동로봇이 소위 미래의 ‘대세’로 떠오르던 초창기에는 항상 제도적 정비에 대한 논의가 함께 화두로 떠올랐다.
최근에는 자율주행로봇을 기반으로 한 로봇 애플리케이션이 로봇업계의 화두이다. AGV/AMR과 같은 물류로봇뿐만 아니라 서빙, 배달, 순찰, 택배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 영역에서 자율주행로봇을 적용하려고 많은 기업들이 궁리 중이다. 사실 로봇이 음식을 나르고, 택배를 가져다주고, 감시·경계를 하는 콘셉트는 국내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연구해온 분야이다. 다만 센서와 AI, 통신과 같은 요소 기술의 발전이 거듭되면서 이제는 시장성을 따져볼만 한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자율주행로봇이 실외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기업들은 또 다시 곤란에 빠졌다. 이 로봇이 차도를 이용해야 할지, 인도를 이용해야 할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운용을 해도 되는지 등 연구소에서 로봇을 개발할 때는 고려치 않았던 여러 가지를 고민해야 했다. 실증을 준비하던 자율주행로봇 기업들은 현행 도로교통법상 실외 자율주행로봇은 ‘차마’에 해당하기 때문에 보도나 횡단보도와 같은 보행자 통로에서 통행이 제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적용 분야별로 놓고 보면 생각해야 할 거리는 더 많아진다. 예를 들어, 택배나 작은 화물을 배송하는 사업은 생활물류법상 화물차나 오토바이 등 이륜차로 규정돼 있는데 자율주행로봇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지, 순찰 로봇이 감시·경계 임무를 하면서 촬영한 불특정 다수의 정보를 활용해도 되는지. 연구소 밖을 나온 자율주행로봇은 고려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지난 2019년 12월 18일(수) 한국기술센터 21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제6차 산업융합 규제특례심의위원회’에서 실외 자율주행로봇과 자율주행셔틀버스 운행 서비스를 포함한 6개의 안건이 실증특례 과제로 의결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또한 이 같은 사례는 비단 자율주행로봇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올해 3월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로봇 新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은 집중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 시대의 로봇 기술과 제품 중 시장에서 잠재성이 높은 분야의 관련 규제를 재정비해 총망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난 2020년 로봇 규제 개선 로드맵에서 개선한 9개 과제의 미흡한 부분에 대한 개선점과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신규 로봇 규제 개선 과제 목표가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자료. 한국로봇산업진흥원 / 편집. 로봇기술
기존 로봇 규제 개선 평가
로봇 新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첨단로봇 규제혁신 방안에 따르면, 앞서 발표했던 기존 로봇 규제개선 로드맵('20년)을 통해 현재 9개 과제를 개선했으나 산업계 기대보다 양적으로 부족하고, 시장파급 효과도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당초 추진하려 했던 33개 과제 중 개선된 실적이 9개 과제에 불과해 규제 개선에 대한 산업계의 체감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선 과제 발굴 이후 산업계의 비즈니스 수요를 반영한 추가 과제가 없어 산업 수요와 규제 개선 과제 간의 시차가 발생했다는 의견도 있다. 아울러 기존 33개 과제 중 중장기 과제 비중이 높아 속도감 있는 규제 개선이 어렵고, 이는 시장 파급 효과를 낮추는 요인이라는 분석이 있었으며, 이 밖에 사람 중심 제도에 로봇의 진입을 허용해야 하는 로봇 산업의 특성에 따라 관련 부처 및 산업계 협력 체계 가동이 필수적이나 민관의 긴밀한 협력에 한계점이 있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첨단로봇 규제 혁신 방안 기본 방향
기존 로봇 규제 개선 방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산업계의 신규 비즈니스 수요를 중심으로 규제 개선 과제를 대폭 확대하고, 최대한 속도감 있게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시장 상황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로봇 규제 개선 과제를 수용하고, 책임 부처 주관으로 명확한 과제 완료 로드맵을 마련하며, 긴밀하고 유기적인 규제 개선을 위해 민관협의체를 주기적으로 가동하는 등 규제 개선 프로세스 및 협업 체계를 정립한다.
주요 추진 과제로는 ▲모빌리티 ▲세이프티 ▲협업·보조 ▲인프라의 4대 영역을 중심으로 51개 과제를 선정했으며, 시장 수요 및 산업 성장 동인을 고려해 단기 39건, 장기 12건으로 단계별 과제를 수립했다.
자료. 한국로봇산업진흥원 / 편집. 로봇기술
⦁모빌리티
이번 첨단로봇 규제 혁신 방안에서는 로봇 모빌리티의 범위를 더욱 확대한다. 기존의 전통적 고정형 로봇에서 이동성(Mobility)을 갖춘 로봇이 제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골자이다.
로봇의 이동성이 확보되면서 현재 단거리 배송 서비스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 중이지만, 미래에는 일상생활 전반에 로봇이 도입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실내 단거리 배송 중심에서 중장거리 운행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가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미래 시장에 대비해 보도 통행 등 로봇의 이동성을 보장하도록 관련 법령 근거를 마련하고, 배송, 순찰, 주차 등 신규 사업 창출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한다.
이동성 확장과 관련해서는 실외 이송로봇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도록 보행자, 통로, 도시공원, 국가정원 등의 통행을 허용하고, 자율주행로봇 이동 시 주변 상황 정보 수집 등을 위한 촬영이 가능하도록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개선한다.
또한 신사업 창출을 위해 새로운 서비스 창출이 가능하도록 기준을 신설, 개선함으로써 실외 이송로봇의 배송사업, 배달로봇을 이용한 옥외광고 등을 허용할 계획이며, 이 외에도 공동주택 내 주차로봇 도입, 경찰 장비 활용의 일환으로 순찰로봇 도입, 로봇을 활용한 소독 서비스 등 로봇 기반 신규 서비스 도입 촉진을 장려한다.
⦁세이프티
로봇의 안전 서비스 시장 진입을 확대하기 위해 로봇이 건설·해양·소방 현장 등에서 인간 활동을 보조 또는 대체함으로써 작업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건설·해양·재난 현장에서 위험 작업을 대체하는 로봇은 향후 건축물이나 기반시설의 원격점검을 수행하는 분야까지 시장이 확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첨단로봇 규제 혁신 방안에서는 안전로봇 도입이 가능한 건설·재난·해양 영역에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안전 분야의 신규 서비스 허용을 추진한다.
사용 기준 정비와 관련해, 수중청소로봇이 유출된 기름을 회수하거나 선박(표면, 기름탱크) 청소가 가능하도록 해양환경관리법 등록 기준을 개정하고, 재난안전로봇을 소방 장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성능·시험방법을 마련하며, 재난안전로봇 도입 분야별로 세부 운용 규정을 신설한다. 또한 선설로봇의 설치 활용이 가능하도록 등록 기준을 마련하고, 로봇 활용 건물 점검을 위한 규정을 개정한다.
신사업 창출과 관련해서는 소화기를 탑재한 순찰로봇 등 재난안전로봇과 관련해 새로운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안전성 검증 및 허용을 추진한다.
⦁협업·보조
정부는 산업현장 및 조리, 농업, 재활치료 등 다양한 서비스 현장에서 협동·재활로봇이 인간을 보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주요 개선 사항으로는 인간의 활동을 보조하는 협동·재활로봇을 허용하고, 푸드테크 및 돌봄, 재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사용기준 정비 측면에서, 현재 고정식으로 한정되어 있는 산업용 로봇 안전기준의 적용 범위를 확장해 산업용 협동로봇이 이동하면서 동시에 로봇 팔로 작업이 가능하도록 유권해석을 하고, 이동식 협동로봇에 대한 안전기준을 마련한다. 또한 로봇을 활용하는 음식점의 모범업소 및 위생등급 지정을 위한 평가기준을 마련하고, 농업용 로봇에 대한 검정·시험기준을 조기에 마련할 계획이다.
신사업 창출 측면에서는 로봇을 활용한 푸드트럭 튜닝이 가능한지 명확히 규정하고, 맞춤형화장품 조제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선한다. 또한 복지부 공적급여 지원 사업에 돌봄로봇을 포함하고, 재활로봇 활용 의료행위에 수가화를 확대하며, 취약지역 비대면 재활치료 허용을 검토한다.
⦁인프라
새로운 로봇 비즈니스 촉진을 위한 공통 제도 인프라를 강화하는 방안도 이번 첨단로봇 규제 혁신 방안의 주요 내용으로, 정부는 안전성 검증, 실증기반 구축, 생태계 조성 등 로봇활용 확산을 위한 공통영역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민간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서비스 발굴·확산을 위해 실증 및 공공수요 창출을 지원하고,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한 생태계 조성도 여기에 포함된다.
방역로봇, 전기차 충전로봇 등의 운영 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기준 및 안전성 검사 제도 마련, 로봇 관련 사고에 대비한 로봇보험 및 사고이력시스템 구축, 5G 적용 제조로봇의 인증ㆍ실증 지원 및 안전 가이드라인 보급 등 안전성 검증 및 관리를 위한 규제 개선을 추진하고, 범정부 로봇 정책 지원을 위한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 수립 및 가상환경·실환경 기반 국가로봇테스트필드 구축 등 실증기반을 마련한다. 또한 고중량 이송로봇의 승강기 탑승, 충전로봇을 이용하는 전기차의 기계식주차장 탑승 허용 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이 밖에도 생태계 조성을 위해 공공조달 확산, 로봇 국가기술자격 종목 신설 추진, 로봇윤리헌장 마련 등 로봇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기본 법제 정비를 추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