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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Focus] 기술에서 시장으로 변화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치 하이엔드 로봇 연구자 전유물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 범용화 시대 열리나 정대상 기자입력 2024-07-25 09:32:21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구조를 본떠 인간과 유사한 동작을 구현하는 로봇을 의미한다. 휴머노이드 로봇을 정의하는 여러 의의가 있지만, 본문에서는 두 팔과 양손을 가지며, 두 다리로 직립 보행하는 인간과 유사한 크기의 로봇으로 한정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간 각 국가의 로봇 기술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필두로 요원하기만 했던 휴머노이드 로봇의 범용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Apptronik은 올해 3월 메르세데스 벤츠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 사진. Apptronik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해를 꼽으라면 역시 DRC(DARPA Robotics Challenge)가 시작됐던 2012년이 아닐까 싶다. 직전 해, 인류 역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대재앙인 동일본대지진에서 비롯한 챌린지였기에 더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일지도 모르는 ‘와보트 1호*’가 등장한 1973년보다, 전 세계 휴머노이드 연구자들을 장장 3년간의 대장정으로 이끌었던 DRC가 시작된 2012년을 더 많은 사람이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다. 


DRC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챌린지였다. 당시 기술로는 범접하기 힘든 세련된 동작을 구사했던 유명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사실은 정돈된 연구소에서, 잘 갖춰진 환경 아래 수십, 수백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촬영물에 불과했음을 보여준 챌린지였고, 그럼에도 휴머노이드 로봇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한 차원 끌어올렸던 챌린지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月刊로봇기술」 이 2012년 7월호 특집 주제로 휴머노이드 로봇을 다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와보트 1호는 일본 와세다 대학의 가토 이치로 교수팀이 1973년 공개한 로봇으로, 인류 최초로 2족 보행하면서 일본어를 발음한 로봇으로 알려져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치 변화
12년 전 본지에서 기획했던 휴머노이드 로봇 특집을 재독해보니 휴머노이드 로봇을 바라보는 지금과 당시의 시선이 사뭇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시장 측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지니는 가치가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본지 휴머노이드 로봇 기획의 큰 주제는 기술이었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괄적인 역사부터 시작해, 관련 기술을 조명하고, 국내 휴머노이드 로봇 거장들의 인터뷰를 게재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 나라의 로봇 기술을 대변하는 지표였다. 2012년 시작해 2015년 카이스트 오준호 박사팀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던 DRC는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원전 폭발 사태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던 각국의 로봇기술을 더 실용적으로 발전시키고자 추진됐지만, 한편으로는 각국의 로봇 연구자들이 국가의 위상을 걸고 경쟁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5년, DRC에서 우승했던 한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가 직접 운전한 자동차에서 내리고 있다.

/ 사진. 레인보우로보틱스 유튜브 영상 갈무리


휴머노이드 로봇이 한 국가의 로봇 기술력을 대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상 모든 로봇 기술을 아우르는 총체이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적용된 각각의 단위 기술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개발된 상업용 로봇보다 더 폭넓고, 또한 많은 양을 필요로 한다. 인간의 형태를 구현해야 하므로 팔, 다리 역할을 하는 매니퓰레이터와 함께 로봇 핸드나 오감을 구현하는 센서, 이족 직립보행을 위한 알고리즘 등 다양한 요소기술의 융합이 필요한데, 상용화된 부품을 사용하면 그 자체로 부피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콤팩트하게 커스터마이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스스로 보행하기 위해 배터리 방식을 주로 채택하는 만큼 에너지 절감 방안도 마련해야 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그 수많은 요소를 조율하는 시스템 통합 능력도 요구된다. 이처럼 기술 집적도가 높다는 이유로 휴머노이드 로봇은 한 나라의 로봇 기술을 가늠하는 상징적 가치로서 자리매김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왜 시장성이 없었나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제조용 로봇이나 서비스 로봇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해당 목적에 최적화된 구조로 설계되며, 대량 양산 및 상업화에 유리하도록 규격화된 부품을 사용한다. 반면 시스템 통합의 결정체라 할 수 있을 만큼 기술 집적도가 높은 휴머노이드 로봇은 상업화에 불리한 여러 요소를 지니고 있다. 


먼저 복잡하고 집적도가 높은 만큼 로봇의 신뢰성이 문제가 된다. 또한 복잡한 하드웨어에 고성능 소프트웨어까지 탑재돼 있어 시장에 유통된다고 해도 메인터넌스 측면에서 큰 리스크를 안게 된다. 고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그리고 인공지능까지 융합된 휴머노이드 로봇의 유지 보수가 가능한 시스템 파트너를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격도 진입 장벽이다. 더 복잡한 시스템이 집적된 만큼 신뢰성을 높이려면 고성능의 구성품이 필수적인데, 여기에 대부분의 구성 요소를 커스터마이징해야 하는 만큼 원가 상승은 피할 수 없다,


이 같은 이유로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미 상업화에 성공한 로봇들이 대응할 수 없는 특수한 영역을 공략해야지만 시장이 열릴 것으로 여겨졌다. 대표적으로는 DRC의 주제였던 재난/재해 로봇이 여기에 포함된다. 방사능 오염 지역과 같이 사람이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서, 두 다리로 장애물을 건너다니며 양팔로 작업할 수 있는 로봇의 필요성은 동일본대지진발 원전 사고 현장에서 똑똑히 목도했다. 다만 DRC 종료 이후로도 재난/재해 대응용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유의미하게 개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간 휴머노이드 로봇에서 파생된 실제적인 시장은 크게 세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 자체를 판매하는 시장이다. 최첨단을 달리는 로봇 기술의 집약체라는 특성은 범용적인 상용화 시장 진입 측면에서는 제약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뤄진 사례들이 있다. 전신이든, 로봇 팔이든, 또는 로봇 손이든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은 그 자체로 로봇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연구 소재이다. 


또 다른 시장은 휴머노이드 로봇에 적용된 기술을 상업화된 로봇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제조 현장에 활용하기 위한 양팔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의 로봇 팔 기술과 힘 센싱 기술을 접목한 협동로봇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분야에서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국내 코스닥 상장회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이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를 전신으로 하는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휴보를 개발하며 축적했던 로봇 요소 기술들을 모듈화해 여러 로봇 제품을 출시했다. 휴보의 로봇 팔 제어 기술을 기반으로 협동로봇을 출시했고, DRC 결승에서 보여줬던 자율주행기술을 활용해 AMR도 선보였다. 


이 밖에 휴머노이드 로봇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도 있다. 로보티즈의 다이나믹셀이나 코어리스 모터 제조사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용으로 개발한 초소형 모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범용화 기대
사실, 앞서 언급했던 이유로 2020년에 들어서도 휴머노이드 로봇의 범용화 시장 가능성은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가정이든, 공장이든 휴머노이드 로봇을 한 대씩 들여놓기에는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휴머노이드 로봇 플랫폼은 수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로봇 시장으로 여겨졌다, 언론에 발표된 휴보2의 가격은 2009년 출시 당시 5~6억 원 사이(와이어드코리아, 2020. 1. 2, [런칭스페셜]코리안 휴머노이드 ‘휴보’ 15년 라이프中). 일반적인 6축 다관절로봇 20여 대에 달하는 금액이지만 출시 이후 세계적인 기업 구글이 연구용으로 구매했고, 미국, 싱가포르 등의 대학 연구진들도 잇따라 주문한 걸로 알려졌다. 즉,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로봇은 아니지만, 기술적 진보를 추구하는 이들이라는 뚜렷한 수요층이 존재하는 분야가 바로 휴머노이드 로봇이었다. 


그런데 불과 3~4년 만에 일부 수요자를 위한 고가 상품이었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범용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계기는 2021년 8월 테슬라가 AI Day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콘셉트를 발표하면서였다. 당시 엘론 머스크는 ‘테슬라봇(Teslabot)’이라는 이름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소식을 공개하면서 이듬해 시제품 출시를 약속했다. 자본시장에서 ‘위대한 쇼맨’의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엘론 머스크의 급작스러운 휴머노이드 로봇 발표 소식에 로봇 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단순히 쇼로 치부했던 이들 중 일부는 엘론 머스크가 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한 이유로 ‘위험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일상 업무를 대신 처리함으로써 인간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는 점에 주목했다. 테슬라가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노동을 대신할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드는 건 다른 문제다. “수억 원짜리 로봇을 고작 단순 노무에 사용한다고?” 당시만 해도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격을 산업용 로봇 수준으로 낮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에 테슬라봇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듬해 테슬라는 2세대 테슬라봇, 속칭 ‘옵티머스’를 실제로 공개하면서 판매가 ‘2만 달러’라는 또 한 번의 폭탄을 투하했다. 대량생산을 통한 저렴한 가격과 AI를 적극 활용한 단순한 구동 방식 등 상품화를 위한 콘셉트도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2023년에는 옵티머스가 간단한 수준의 분류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과, 작업 중간에 인간이 방해해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모습, 외발로 균형을 잡으며 요가하는 모습 등을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불과 3년 만에 테슬라의 로봇 사업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범용화라는 새로운 가능성에 불을 지핀 셈이다. 

한편 엘론 머스크는 내년부터 테슬라봇을 실제 현장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테슬라봇이 보여준 가능성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연구실을 벗어나 실제 작업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실제로 작업 현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투입을 추진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동차 제조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이다. 

 

Figure는 BMW매뉴팩처링과 파트너십을 맺고 BMW 미국 제조 공정에 휴머노이드 로봇 통합을 위한 테스트를

시작했다. / 사진. Figure


로봇 스타트업 Figure는 BMW매뉴팩처링과 파트너십을 맺고 스파르탄버그,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BMW 공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고 있다. 이 로봇의 콘셉트 또한 테슬라봇과 같다.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위험하거나 어려운 작업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체하고, 특히 반복적이면서 지루한 작업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자동화함으로써 생산성 향상과 비용절감을 도모한다. Figure는 픽 앤 플레이스와 팔레타이징 및 디팔레타이징 등과 같은 단순 반복 작업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학습하면 충분히 공정에 통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pptronik 또한 완성차 메이커와의 협력 소식을 알렸다. Apptronik은 올해 3월 메르세데스 벤츠와 자동차 제조 공정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밝혔다. 

 


NIO 첨단 자동차 제조 센터 조립 라인에 ‘인턴’으로 투입된 UBTECH의 Walker S / 사진. UBTECH 유튜브 영상 갈무리


중국의 UBTECH도 자동차 메이커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초 NIO 자동차 생산라인에 ‘인턴’ 휴머노이드 로봇을 테스트하며 이슈를 모았던 UBTECH는 최근 폭스바겐과도 휴머노이드 로봇 관련 협약을 체결했다. 


자동차 공장 외에 물류 현장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히 GXO로지스틱스는 올해 초 휴머노이드 로봇 대량 양산에 돌입한 Agility Robotics의 휴머노이드 로봇 테스트에 이어 최근에는 Apptronik과 휴머노이드 로봇을 이용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 PoC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 Agility Robotics는 GXO로지스틱스와 PoC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 사진. Agility Robotics

 

휴머노이드 로봇 강국의 기준이 달라진다
한국은 두 발로 걷는 로봇을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든 국가이고,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모였던 DRC를 우승한 국가로서, 명실상부 휴머노이드 로봇 강국이다. 그러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의 패러다임이 기술 고도화에서 상용화로 전환되는 시점이 다가옴에 따라 그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현재 유니트리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국내에 공급하고 있는 영인모빌리티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산업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려면 다양한 현장에서 신뢰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술적 안정성과 함께 개발, 생산, 유지 보수 등의 비용 절감, 즉 경제성 실현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로봇 도입에 따른 교육과 인식 개선으로 작업자들이 로봇과 협력해 효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준화된 인터페이스와 프로토콜을 개발해 로봇의 상호 운용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스템과 용이하게 통합돼야 한다.”라며 “끝으로, 각 산업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로봇 솔루션을 개발해 적용성을 높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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