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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좀 보세요” 신용경제 기자입력 2017-07-10 19: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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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족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맛있는 과일과 식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중 한 분이 속이 영 좋지 않아 보입니다. 배가 아프고 울렁거려서 드시지 못하지만, 참 맛있게 보이는 음식을 보며 이렇게 물어봅니다.
“어떤 맛이야?”
옆에서 맛있게 먹던 가족이 연신 쩝쩝대며 “응 맛있어!”라고 대답합니다. 본인은 속이 불편하지만,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그 맛이 궁금했을 환자의 입장에서는 참 서운한 대답으로 느껴졌을까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봐~”

“응~ 올해 먹은 참외 중에 가장 맛있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쓰인 ‘책 도둑(The Book Thief)’에서는 나치를 피해 지인의 지하실에 숨어있던 유대인 청년이 바깥상황이 어떠한지 그 집의 어린 딸에게 물어본다.
“흐렸어요.”
“아니, 그렇게 말고. 너의 이야기로 설명해 봐. 너의 눈이 말할 수 있다면 뭐라고 말할 것 같아?”
“창백한 날이었어요. 모든 것이 구름 뒤에 붙어있었고, 태양도 태양 같지않게 보였어요.”
“그럼 뭐처럼 보였는데?”라는 질문에,
“은빛 굴처럼 보였어요”라고 대답한다.
그제야 지하에만 갇혀있어 지쳐있던 청년의 미소가 보이며, 마치 소녀의 설명 장면을 보고 있는 듯 고마워한다.

 

눈이 불편한 분들이 보지 못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서도 “음, 멋졌어요” 정도로 답을 못하고,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걷지 못한 공원을 걸으면서도 “좋아요!”라고 응답하며, 어떤 맛이야 묻는 분들에게 “맛있어요!”라는 정답 - 정답 같지만, 정답 이면에 담긴 깊은 풍경과 맑은 공기, 흙을 밟을 때의 촉감에 대해서는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또한, 내 입안에 들어간 음식이 나와 결합될 때의 감격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별점이나 10점 만점에 몇 점으로 표현하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다 보니, ‘흐린 하늘에 구름 뒤에 숨어있는 태양이 은빛 굴처럼 보인다’는 표현에 감동을 받기보다는 ‘그게 뭔 소리야? 그래서 그게 회색이란 소리야? 흰색이란 소리야?’라는 반응이 오기도 한다.

 

입맛을 잃으면 진수성찬이 무의미하다.
어쩌면 맛있는 과일을 보면서도 배 아픔으로 먹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슨 좋은 성분이 들었다고 해~”라는 식의 건강식품 소개하는 듯한 멘트는 의미 없을 것이며, 단순히 맛있다, 맛없다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맛있게 잘 먹는 가족의 미소 띤 표정과 아삭거리는 소리가 불편했던 위장이 마사지 받듯 좋아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라면 아삭한 참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고민해본다.
“참외 씨를 담고 있는 참외 과육의 방주 같은 구원의 맛!”
“상큼한 자연의 이야기라 담긴 드라마틱한 맛!”

 

그냥 “맛있다”밖에 표현할 수 없는 표현력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며, “올해 먹은 최고의 맛!”과 같은 홈쇼핑 호스트의 언어에 적응된듯한 표현력의 담(痰) 결림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 과일 맛 좀 보세요!
도대체 어떤 맛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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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신용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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