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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막걸리에 숨은 경제원리 신용경제 기자입력 2017-07-10 18:16:35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탄생하기까지에도 합리성에 근거한 경제적 해법이 투영되어 있다. 막걸리는 ‘범위의 경제’를 통한 합리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범위의 경제란 기업이 여러 재화나 서비스를 함께 생산할 때 발생하는 총비용이 그러한 재화나 서비스를 별도의 기업이 생산했을 때 발생하는 총비용보다 작아지는 경우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두 개의 제품을 한 기업이 생산할 때의 총비용이 두 개의 제품을 각각 다른 기업들이 생산할 때의 총비용 합계보다 작을 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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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의 경제를 가져다주는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생산 과정에서의 ‘비분할성(indivisibility)’을 들 수 있다.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여러 비용 중에는 제품의 생산량이 줄어들면 이와 함께 비용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제품의 생산량이 줄어도 비용이 함께 줄어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생산량이 줄어도, 투여된 생산요소가 줄지 않아 비용을 줄이기 어려운 경우를 비분할성이라 부른다. 이러한 비분할성은 범위의 경제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예를 들어 특정 회사가 고객에게 물품을 발송하기 위해 트럭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고객들이 물건을 1개 주문하든 10개 주문하든 주문한 물품을 배송하기 위해 트럭을 운행하는 비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물건을 1개만 주문하면 해당 물건을 만드는 데 투여되는 원료비, 제조비 등은 그만큼 줄어들지만, 배송비는 줄어들지 않는 비분할성을 가진 것이다. 이 경우 만약 이 회사가 트럭의 빈 곳을 활용하여 택배 배송업을 같이 하기로 결정한다면, 이는 범위의 경제를 통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막걸리 역시 이러한 범위의 경제에 해당한다. 몇 가지 분류 기준이 있지만, 우리의 전통 술은 크게 청주, 탁주, 소주로 구분할 수 있다. 막걸리는 이 중 탁주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이 막걸리와 탁주를 같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다 정확히 말해 막걸리는 탁주의 한 종류이다. 실제로 막걸리는 법적 공식 명칭이 아니며, 법적으로도 탁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네 전통 술을 세종류로 구분하고 있지만, 이 술들을 제조하는 방법은 하나의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별도의 제조과정을 통해서 각각의 술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조 과정으로 다양한 술을 만들어내는 범위의 경제를 통해 얻은 결과물이다.
청주와 막걸리를 얻기 위해서는 모두 곡물과 물 그리고 누룩이 필요하다.
누룩은 쉽게 말해 일종의 효모와 곰팡이가 섞여 있는 미생물 덩어리다. 멥쌀, 찹쌀, 밀과 같은 곡물이 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 곡물들이 함유한 전분을 당으로 분해해야 하는데, 누룩이 바로 이 역할을 수행한다. 누룩을 넣으면 밥이 흐물흐물해지면서 죽처럼 변하고, 다시 완전한 액체 상태로 변화하면서 술이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액체와 고체가 섞여 있
게 되는데, 흔히 액체는 술이고, 고체는 술지게미, 즉 술을 빚은 과정에서 술을 짜내고 남은 일종의 찌꺼기를 의미한다. 이때 술지게미를 제거하고 맑은 액체를 분리하기 위해 체를 이용해 얻은 맑은 술이 바로 청주이다. 그리고 남은 액체와 고체가 섞여 만들어진 술이 바로 막걸리이다. 이처럼 막걸리는 별도의 제조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술이 아니라 청주를 얻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부산물인 술지게미에 다시 물을 넣어가며 체로거른 술이다.
막걸리와 유사한 동동주 또한 같은 과정에서 얻은 범위의 경제의 결과물이다. 곡물과 누룩, 물을 섞어 발효하다 보면 밥알이 가벼워져 술 위에 둥둥 뜨는 시점이 생긴다. 이때 거른 술이 바로 동동주이다. 동동주라는 이름 또한 밥알이 술 위에 ‘동동 떠다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동동주는 완전히 발효된 상태가 아니라 당의 성분이 많이 남아 있어 단맛이 더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 동동주라는 명칭이 널리 알려진 것은 한 양조회사가 쌀로 빚은 막걸리를 출시하면서 이전의 밀 막걸리와 달리 쌀로 된 막걸리임을 강조하기 위해 밥풀을 띄우고 이름을 동동주라 붙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정확한 동동주의 구분은 위의 설명과 같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할 때, 청주, 막걸리, 동동주 등은 하나의 과정을 통해서 다양한 술을 만들어낸 일종의 범위의 경제를 통한 결과물들이다.
범위의 경제를 가져다주는 또 다른 원인은 바로 ‘재고비용’이다. 재고는 물건을 못 팔고 남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실 오늘날 많은 기업이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수량을 재고로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경우에는 특정 부품이 하나 부족하면 이것이 전체 생산 공정을 중단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다. 따라서 재고는 이러한 측면을 대비하기 위해 유지해야 할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재고를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발생한다. 일단 생산된 제품이 바로 팔리지 않으면 보관비용 등이 발생한다. 또한, 그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출이 이루어졌다면 이자 비용 등도 발생한다. 이러한 일련의 비용들은 재고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들이며 이는 다시 제품의 평균생산비용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 이때 범위의 경제는 재고비용을 절감하는 유의미한 방식이다. 그 전형적인 사례를 막걸리에서 찾을 수 있다.
술을 만들기 위해 보유해야 할 필수재고 중 하나가 누룩이다. 누룩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미생물 덩어리로, 곡물에 포함된 당을 알코올로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포도나 사과, 사탕수수로 만드는 여타 술들은 그 자체에 당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의 첨가물 없이 알코올이 생성되지만, 찹쌀과 멥쌀 같은 곡물은 주성분인 전분을 당화하기 위해서 이러한 분해 과정을 돕는 누룩이 꼭 필요하다. 이처럼 술을 만드는 데 있어 중요하기에 누룩은 예부터 주모나 양조 업자들이 애지중지해온 신비의 물건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누룩을 제조하는 체계적인 기술을 보유하기 시작한 시기는 고려 시대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고려 문인 이규보의 국선생전(麴先生傳)에는 누룩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후 전국 지방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누룩 제조법 등을 발전시켜 다양한 토속주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누룩은 밀을 가지고 만든다. 지역에 따라서는 쌀, 녹두, 보리, 팥 등의 재료들을 사용해 만들기도 한다. 재료뿐만 아니라 만드는 방식과 계절에 따라 술을 익히는 데 미치는 영향이 상이한 누룩이 만들어진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누룩은 관리를 잘해야 좋은 술을 얻을 수 있으며, 누룩에 다른 균이 배양되거나 온도가 적정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술맛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럼 양조 과정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누룩은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들어둔 누룩을 관리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과 금전적 비용이 투여된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일종의 재고비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재고비용을 절감하고, 좋은 누룩을 통해 더 좋은 성과를 얻는 방법은 누룩을 한 번 사용했을 때 다양한 술을 양조하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귀한 누룩을 사용해 청주, 막걸리, 동동주, 소주 등을 한 번에 만들어내는 지혜를 발휘해낸것도 이 때문이다. 이 또한 범위의 경제에 해당한다. 이렇게 한 번에 많은 양의 술을 단일 품목으로 만드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많은 양을 양조하여 청주나 막걸리 등과 같은 다양한 술을 얻어낸다면 그리 부담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 소량의 물품을 구매할 때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을 주어야 하지만, 다량의 물품을 구매할 경우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다. 오늘날 산업 분야에서는 범위의 경제를 구매 과정에서 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필수 원자재의 경우 자신의 회사 물량만으로는 구매 단가를 낮추기 어렵다면 여타 회사와 함께 공동으로 대량 주문하여 구매 단가를 낮추기도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범위의 경제는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는 유의미한 수단이다. 이로 인해 기업의 인수합병(M&A)을 결정하거나 신규 사업 진출 여부를 결정할 때도 범위의 경제를 고려한다. 또한, 생산라인을 완전 자동화할지 부분적으로만 자동화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범위는 중요한 고려 요인이다. 이처럼 중요한 경제 개념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생활 속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해왔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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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신용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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